“이준열사 기념관 사라져도 좋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교민2세 등 年2000명 찾는, 유럽에 하나뿐인 ‘헤이그 선열유적지’…
기념관 운영 이기향씨 부부

“집사람과 매일 세 시간씩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의 집에서 헤이그의 이준열사기념관으로 출퇴근을 한 게 벌써 16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몸도 힘드네요. 유럽에 단 하나뿐인 애국 열사 기념관이 살아남을 수 있게 정부와 국민이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네덜란드에 왔다가 눌러앉아 살고 있던 이기항(75) 송창주 씨(72) 부부가 한 일간지에 드용 호텔이 재개발로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는 작은 기사를 발견한 것은 1992년.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 참석해 을사늑약의 무효를 선언한 뒤 비분강개한 이준 열사가 머물다 분사한 바로 그 호텔이었다.

선열 유적지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헤이그 시를 설득해 철거를 막고 20만 달러를 들여 1993년 호텔을 인수한 이 씨는 사재를 추가로 투입하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도움을 받아 1995년 이준열사기념관을 열었다. 이후 16년을 지켜왔지만 기념관을 지키기에는 이 노부부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너무 크다.

그동안 송 씨는 관장, 이 씨는 이준아카데미 원장을 맡아 지속적으로 자료를 사 모아 전시해 왔다. 연 2000명의 방문객이 찾는 기념관은 교민 2세를 상대로 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운영돼 왔다. 이 씨 부부는 20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독일과 벨기에 등지에서 교포 자녀들이 찾아와 위대한 선열의 역사를 보고 돌아가는 게 얼마나 큰 보람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헤이그 시도 이준 열사 순국일인 7월 14일을 ‘이준 열사의 날’로 정하고 헤이그 시를 소개하는 책자와 주요 관광지 20곳을 담은 공식 관광지도에 기념관을 포함시켰다.

“16년 동안 제 돈을 들여 모자란 운영비를 채워왔으나 이제 저희 부부도 늙었고 경제적 여건도 어렵습니다. 특히 수리를 해야 할 건물이 보기에도 민망한 상태로 3년 이상 방치돼 쇠락해가는 게 외국인에게 부끄럽습니다.”

이 원장은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이 유럽에 유일한 선열 유적지를 이대로 방치하면 되겠느냐”며 유럽의 박물관과 음악관에 많은 비용을 후원하며 홍보를 하는 대기업이나 시민사회단체 등이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보호 관리 같은 역사와 후손을 위한 일에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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