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학교 진명여고 100회 졸업식

  • Array
  • 입력 2011년 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1906년 고종황제 뜻 받들어… 엄순헌 귀비 친정 통해 세워
“일제치하 나라 구하기 일환”… 황실 적통 이원씨 함께 자리

대한제국 황사손인 이원 선생(오른쪽)이 9일 서울 진명여고 류종림 교장과 함께 교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대한제국 황실이 세운 학교로 이날 100회 졸업식이 열렸다.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대한제국 황사손인 이원 선생(오른쪽)이 9일 서울 진명여고 류종림 교장과 함께 교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대한제국 황실이 세운 학교로 이날 100회 졸업식이 열렸다.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대한제국 황실의 돈으로 세운 서울 진명여고가 9일 100회 졸업식을 열었다.

양천구 목동에 있는 이 학교는 명성황후 승하 뒤인 1906년, 당시 국모였던 엄순헌 귀비가 고종황제의 뜻을 받들어 친정 오빠(엄준원)를 통해 세웠다.

이런 역사에 대해 학생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이날 졸업장을 받은 정민주 양은 “입학 전에는 진명여고에 배정됐다는 사실만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고, 입학 뒤에는 100회 졸업생이 된다는 자부심을 1학년 때부터 가졌다”고 말했다.

100회 졸업식장을 찾은 동문들 역시 황실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58회 졸업생이자 진명여고 교사인 김은경 씨는 “학생 시절 체육대회가 열리면 영친왕비였던 이방자 여사께서 상궁 둘을 데리고 학교를 찾곤 하셨다”고 추억했다. 61회 졸업생으로 33년째 후배를 가르치는 현애미 교사도 “졸업식 때 이 여사께서 상장을 직접 주셨는데 그때 받은 은반지를 아직도 갖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졸업식에는 황실의 적통을 잇는 자손(황사손·皇嗣孫) 이원 씨가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고종께서 일제 치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여러 방도를 고심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교육이었고, 당시 조선총독부의 눈을 피해 황실에서 세운 첫 학교가 진명학교”라고 설명했다.

재학생이 꼽는 진명여고만의 특별한 전통은 ‘보수연(保壽宴)’. 6·25전쟁의 피란 시절 살아남은 학생과 교사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기려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던 행사를 5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분기마다 학생과 교사가 예를 갖춰 생일을 축하한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후배를 가르치는 교사도 17명이나 된다. 학생대표로 졸업사를 읽던 이초록 양이 “학교를 떠나기가 아쉬운 이유는 선생님들 때문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며 울먹이자 졸업생 640여 명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황사손은 “황실과의 인연으로 졸업식장을 찾았다. 앞으로 학생들이 전통을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역사의식을 교육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