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가여운 아버지에겐 반전이 있다. ㈜영화사 안다미로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1]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호숫가 외딴집에 홀로 사는 늙은 아버지가 분주히 움직여요. 2년 만에 자신을 찾아오는 중년의 딸과 아들을 맞을 채비 중. 근데 이상해요. 집 안을 치우는 게 아니라 어지럽히고 있거든요. 이윽고 자녀가 도착하고, 구부정한 아버지는 “줄 게 이거밖에 없다”며 수돗물을 유리컵에 담아 건네요. 소싯적 딱히 확실한 직업도 없어 연금도 나오지 않는 아버지는 죽은 엄마 사진만 보며 과거에 갇혀 사네요. 마음이 미어지는 남매. 대화조차 익숙지 못해 어버버하는 아버지의 가여운 모습에 좌불안석이 된 남매는 아버지에게 용돈을 쥐여드린 뒤 도망치듯 집을 나서죠.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미국 짐 자무시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지난해 12월 개봉)를 구성하는 3개의 에피소드 중 첫 번째 토막이에요. 이런저런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순간순간을 포착해 시처럼 스크린에 뿌리는 자무시의 장기가 복제된 작품이죠. 탁월한 미학적 성취도, 앙칼진 정치적 주장도, 숨막히는 장인정신과 완성도도 보여주지 못하는(아니 않는) 이 영화가 베니스 최고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유일한 파격인 이 영화는 그 안에 매설된 진짜 덕목이 있어요. 별반 대수로운 얘길 하는 게 아니라는 투의 느물느물한 태도 자체죠.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에피소드는 반전을 맞아요. 남매가 집을 떠난 뒤 소파를 덮어놓은 낡은 담요를 아버지가 쫙 걷어내니 최고급 가죽 소파가 드러나요. 슈트로 갈아입은 아버진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능숙한 언변으로 “뜻밖의 현금이 생겼다”며 단골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하죠. 그러곤 마당 구석에 숨겨 놓았던 뻔쩍이는 세단을 몰고 시내를 향해 액셀을 밟는다니까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포크 가수 밥 딜런이 영화감독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자무시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자무시 영화에선 서론과 결론 없이 어떤 노곤한 모먼트만이 점멸하니까요. 이 영화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란 모던한 질문을 넘어 ‘당신은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라고 물어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홀어머니를 1년에 딱 한 번 연례행사로 만나는 자매의 이야기인데, 이들 모녀는 남만큼 서투른 모습으로 만나 티타임을 가진 뒤 남보다 더 서투른 뒷모습으로 헤어지죠. 그런데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는 달라요. 죽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살던 월셋집을 정리하러 간 쌍둥이 남매가 어머니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이야기죠. 역시나 정겨운 해피엔딩이라고요? 오히려 저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소름 돋았어요. 부모와 진심을 나누고 도타운 사랑을 자식들이 공유하는 순간은, 오로지 부모가 죽었을 때뿐이라는 서늘한 농담으로 읽혔으니까요.
[2] ‘언제나 마지막까지 내 편인 것은 가족’이라는 생각은 이젠 실속 없는 믿음을 넘어 환상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놈의 돈 때문에 남보다 더 독하게 발등을 찍는 믿는 도끼가 가족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요즘 TV 드라마에는 현실 속 사건에서 영감 받은 듯한 파괴적 가족이 나오죠. 공익변호사의 애환을 담은 ‘프로보노’에는 70여 년 만에 폐지된 형법상 친족상도례(가까운 가족 사이에 재산 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죄를 면제함)를 다루면서 엘리야란 이름의 인기 아이돌 여가수를 등장시키는데, 그녀가 피땀으로 벌어 모은 전 재산을 빼돌리는 건 물론 그녀가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스캔들 사진을 퍼뜨린 장본인이 그녀의 소속사 대표이자 친엄마인 인물로 밝혀지죠.
[3] 새삼 섬뜩하지 않나요? ‘어버이날 부모가 받고 싶은 선물’을 설문조사하면 1위 현금, 2위 상품권인 현실 말이에요. 부모가 자식한테 받고자 하는 감사 선물이 돈이란 뜻이잖아요. 돈 돈 돈 돈 돈. 바꿔 말하면 돈이 오가지 않는 부모자식 관계는 취약해진단 소리니, ‘13일의 금요일’ 뺨치는 공포 상황이 아닌가 말이에요. 보스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피를 나눈 형제보다 끈끈한 의리로 뭉친 영화 속 조폭들에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도 절멸해가는 가족을 부정하고픈 우리 마음이 튕겨내는 애타는 메아리가 아닐까 말이죠. 아, 생각해보니, 조폭의 의리도 돈 때문이네요. 흑흑.
[4] 자무시는 베니스영화제 최고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어요. “예술은 정치적이기 위해 정치를 직접 다룰 필요는 없다”고요. 정말 그래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며, 자식이 자식이 아닌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가족 해체를 넘어 국제사회의 현실과 묘하게 포개어진다고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탐내면서 “무력 개입도 가능하다”고 동맹국 덴마크를 겁박하는 모습은 누가 진짜 빌런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최신 트렌드를 꼭 빼닮았지만, 동시에 조지 로메로의 좀비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죠. 자상했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좀비가 되어 나를 씹어 먹으려 달려온다면? 우리가 지금 미국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아버지가 아버지랄 수 없고 형이 형이랄 수 없는 좀비영화의 근원적 공포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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