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나이죠. 30대는 뭔가 부족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노력들이 하나 둘 결실을 맺는 나이잖아요. 배우로서는 꽃을 피우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는 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압박감에 잠 못 이루고… 그러다 자칫 잃기 쉬운 건강도 챙겨야 하니 이것저것 골치 아프죠.”
‘40대’ ‘중년’ 등의 단어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이 배우, 그래서 그런 걸까? 다음 달 5일 개봉되는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그는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조직폭력배 중간보스 ‘강인구’ 역을 맡았다. ‘배우 송강호’가 아닌 ‘40대 가장’ 송강호의 일상을 보여주는 듯 영화 속 그의 모습은 ‘날 것’ 그 자체다.
“자연스럽다고 편하게 연기한 건 절대 아니에요. 강인구는 평범한 중년이지만 ‘괴물’의 박강두,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처럼 선명한 캐릭터가 아니기에 일상적인 모습을 연기해도 한계가 있고, 일정한 극적인 긴장감은 유지해야 하는 터라 힘이 많이 들었죠.”
휴일이면 런닝셔츠 차림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TV를 보는 강인구. 유일한 낙은 가족을 위해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딸의 캐나다 유학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된 후 가족들이 보내준 비디오를 보고 울면서 ‘비빔면’을 먹는 모습은 실제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을 둔 그에게도 ‘연기’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제가 경상도 남자다보니 애들한테 다정다감하게 해주지 못해요. 게다가 촬영차 전국을 돌아다니다보면 가족과 떨어져 지낼 때도 많고 애들에게 좋은 아빠 노릇을 할 기회가 없고… 이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눈물이 나더군요.”
아버지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이 남자. 그도 그럴 것이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괴물’ 등 최근 출연작에서 그의 모습은 모두 아버지였다. ‘부성애’도 좋지만 자칫 역할이 단조롭다는 지적을 받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역할만 아버지일 뿐 중첩되는 부분은 없다”며 자신 있게 얘기했다.
마흔이 두렵다지만 그는 1997년 영화 ‘넘버 3’ 이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20일에는 홍콩에서 열린 ‘홍콩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 ‘괴물’로 남우주연상도 받는 등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는 현재 ‘부동’. 그러나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저로서는 연극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사실 올해 연말 제 스승인 극단 ‘차이무’ 대표 이상우 선생과 연극 한 편을 하자고 제의 받았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 고민이에요. (최)민식 선배나 (유)지태처럼 다양한 활동도 하고 싶지만 아직 영화를 떠날 수 없어요.”
진지하게 얘기를 하다가도 마무리가 되면 늘 호탕하게 웃는 이 남자에겐 ‘인기 배우’라는 수식어보다 ‘평범한 중년 남자’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아직 한국 영화를 하기에도 부족한 그릇이기에 ‘해외 진출’에도 관심이 없다는 그에게 라이벌은 있을까? 대답은 참(?) ‘우아’했다.
“진정한 라이벌은 내 자신이죠. 내가 만약 김연아 선수라면 아사다 마오 선수가 라이벌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영화배우는 1위를 두고 다투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편안해지고 싶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내 속의 ‘송강호’를 이기고 싶을 뿐이죠.”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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