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남편 뒤이어 벤처경영 송은숙씨

입력 2005-12-03 03:00수정 2009-09-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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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혼자 보는 아픔에 울고, 사무실에 앉으면 당신의 체취가 느껴져서 울고….” 한글문자인식 소프트웨어 제작업체인 한국인식기술㈜ 송은숙(宋銀淑·43·사진) 사장은 요즘도 눈물을 흘린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기업을 운영하면서 보낸 3년이 그에게는 꿈만 같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송 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2002년 11월. 명함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남편 이인동(李寅東·당시 45세) 씨가 과로로 숨졌다.

이 씨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의 인공지능연구부 선임연구원이었다. 명함 글자를 자동으로 인식해 텍스트로 변환한 뒤 개인정보 파일로 관리하는 ‘글눈’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 후 벤처기업을 만들어 직원 40명과 함께 연간 80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코스닥 등록을 2개월 앞두고 과로로 쓰러졌다.

송 씨는 배우자를 잃은 아픔을 혼자 견뎌야 했다. 큰딸 혜진(17) 양은 한밤중에 일어나 우는 엄마를 달랬다. 둘째 혜인(13) 양과 막내 혜령(8) 양은 아빠의 빈자리를 실감하지 못했다.

당장 회사가 흔들렸다. 연구개발과 영업을 이끌던 남편이 떠나자 매출이 곤두박질치면서 10억 원의 부도까지 생겼다. 장외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던 주식 가격은 4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남편이 나의 방황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송 씨는 18년간의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회사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눈물로 호소했다. “회사가 잘되면 다시 모시겠다”며 직원을 14명으로 줄이면서 연구개발팀만 남겼다.

남편의 빈 공간이 컸지만 기술 경쟁과 판로 개척에 나섰다. 직원들은 휴일을 반납하고 밤샘작업을 했다.

100% 글자 인식이 가능한 ‘하이네임’은 이런 노력을 거쳐 1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스캐닝해서 자동 입력한 명함 파일을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인쇄하고 그룹이나 개인별로 e메일을 보낼 수 있는 명함관리 솔루션이다.

‘하이네임 3.0 프로(Hi-Name 3.0 Pro)’는 벤처기업이 많은 대전에서 특히 인기였다. 벤처기업 대표의 90%가량이 기술력을 인정해 제품을 구입했다. 11월에는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이네임 3.0’ 전자화시스템을 갖췄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2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0% 늘어났다. 남편의 빈자리를 채운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세를 나타낸 것이다.

그는 최근 국내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이야기를 다룬 ‘그녀들은 어떻게 CEO가 되었나’라는 책에서 남편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책상과 의자,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그대로 쓰고 있어요. 때론 이 짐이 너무 무거워 휘청거리고 숨을 몰아쉴 때도 있지만 우리 사랑의 무게보다는 가볍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아이들 건강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세요.”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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