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료원 암병동 자원봉사 심은지-김효진-김선영씨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8시 13분


‘삼총사’ 미술 선생님 심은지 김효진 김선영씨(왼쪽부터)가 26일 병원 호스피스실에서 환자에게 미술치료를 하고 있다. -박영대기자
‘삼총사’ 미술 선생님 심은지 김효진 김선영씨(왼쪽부터)가 26일 병원 호스피스실에서 환자에게 미술치료를 하고 있다. -박영대기자
“엄마, 나 죽으면 화장해 줘요.” “무슨 소리야, 넌 절대로 죽지 않아.”

소아암에 걸린 열세살난 아이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의 죽음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느 날, 스스로 붓을 들 수 없는 아이는 병실을 찾은 미술 선생님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보름달이 훤한 가을 밤, 산과 나무에 둘러싸인 빨간 벽돌의 양옥집, 그리고 활짝 열려 있는 울타리. “내가 떠나도 언제나 엄마는 나에게 올 수 있어요”라는 아이의 무언의 메시지를 알아챈 엄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엄마는 비로소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됐다. 아이는 오래지 않아 숨을 거뒀다.

심은지(25) 김효진(25) 김선영(27)씨는 연세의료원 암병동의 자원봉사 미술 선생님 ‘삼총사’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암환자들과 함께 수채화, 종이접기, 콜라주, 찰흙빚기, 카드만들기, 석고뜨기 등의 미술 작업을 한다. 바깥 세상과 동떨어져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병동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의 적적함을 달래주고, 아픔과 고통, 죽음의 공포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주려는 것. 최소한의 몸짓을 사용하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부담도 적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친구로, 손녀로, 누나로 말벗을 해주기도 한다.

“미술을 통한 창조 자체가 치료적인 행위지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면서 성취감과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거든요.” (심은지씨)

영정(影幀) 사진 대신 초상화를 부탁하는 환자들도 있다.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오늘내일 하시던 30대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유화로 그린 초상화를 부탁하셨는데 내내 기다리다가 그림을 완성해 가져다 드리자 초상화를 받아 든 뒤 그날 바로 돌아가셨죠.” (김선영씨)

그러나 인생의 끝을 예상보다 성급하게 맞이하게 된 암환자들을 상대하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환자일수록 “애도 아니고 무슨 미술이냐”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저희가 찾을 때마다 귀찮다면서 쫓아낸 할머니가 계셨어요. 몇 번이고 설득한 끝에 할머니가 가고 싶다는 고향 풍경을 함께 그렸는데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셨죠. 할머니가 병원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웃으신 거래요.” (김효진씨)

4월부터 전공인 미술치료 실습차 이 병원에서 먼저 자원봉사를 해 온 심은지씨의 주도로 서울 강남의 한 미술학원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이들은 8월 의기투합했다. 각자 대학원 공부와 학원 강의로 시간을 맞추기 빠듯하지만 1주일에 하루를 꼬박 환자들을 돌보는 데 쓴다. 10월에는 자신들이 돌보던 말기암 환자들의 작품들을 모아 병원 안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이들에게 왜 봉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마음이 부자가 되니까요. 사실 저희가 여기에서 더 많이 배우고 있는걸요.” 천사 같은 3총사의 대답이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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