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의 일침… “張 지위만 높고, 꿈만 크다”
봇물 터진 張 사퇴 요구… ‘야당 복’만은 아냐
한동훈 부산행 활력으로 PK 단체장 승리 땐
장동혁 숨통 틔워주는 지독한 역설 발생
김승련 논설실장
대구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장동혁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꺼낸 주역의 한 구절은 뼈아프다. 인격과 지혜는 부족한데 지위만 높고 욕망만 클 때 생기는 화(禍)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인간적 됨됨이라 할 수 있는 덕(德), 판단력에 해당할 법한 지(智)는 리더십의 요체다. 장 대표를 직접 겪어보지 못해 그의 덕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 대표로서 내놓은 결정과 처신은 오판의 연속이었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철저한 자기 정치가 도사리고 있었다. 가깝게는 황당한 미국 방문 소동부터, 공천 혼란과 맹목적 한동훈계 징계 회부가 대체로 그랬다. 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싶은 욕심에 취임 1년도 안 돼 식물 대표로 전락했다.
다만, 주 의원이 놓친 게 있다. 야당의 난맥은 장동혁 1인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란 점이다. 장동혁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 아니고, 오히려 기획작품에 가깝다. 국회의원 3년 만에 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스스로 권력을 만든 게 아니다. 탄핵 이후 방향을 잃은 친윤 내지는 ‘언더 찐윤’ 세력이 그를 옹립하다시피 했다. 이러니 마음대로 사퇴할 처지가 아니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설사 그가 퇴진하더라도 ‘친윤 그룹’ ‘짠물 당원’이 내세우는 누군가는 제2의 장동혁이 될 것이다. 주 의원은 사퇴 촉구가 아니라 ‘친윤+짠물’이란 주도 세력을 바꾸는 작업에 나서자고 촉구하고, 스스로 앞장서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장 대표가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는데, 당연한 수순으로 읽힌다. 그는 “지방선거를 마무리하고 당당하게 평가받겠다”고 했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힘의 지지율은 48% 대 20%였다. 이런 지지율 격차를 받아든 상태에서 ‘당당하게 평가받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뿌리는 무엇일까. 우선, 이런 처신은 ‘대책 없음’을 숨기려는 표현일 수 있다. 지금 사퇴한다고 대단한 결단으로 평가받지도 못할뿐더러 본인만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작금의 당 상황이 장동혁 1인만의 책임이랄 수 없고, 그를 교체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사태가 꼬여 있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장 대표가 기댈 법한 구석이 생긴 것도 눈길을 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부산·울산·경남(PK)에서 지지율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선 출구조사 때 PK에서 이재명 후보는 48%, 김문수 후보는 44%를 얻었다. 지난주 갤럽 조사 땐 41% 대 28%로 벌어졌다. 44%와 28%의 차이는 걸려온 여론조사 전화에 “나 국힘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존재를 말한다. 과거 지지자였고, 잠재적 우군인 이들이다.
현재 당 안팎에선 ‘국힘이 선거에 참패해야만이 장동혁 체제가 무너진다’는 믿음이 형성돼 있다. 그래서 6월 선거 때 기권하겠다는 보수층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국힘이 달라지거나, 혹은 달라질 것이란 믿음을 준다면 이들이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이런 변화가 정말로 PK에서 생기더라도 그건 장 대표의 성과는 아니다. 선거 때 막판에 나타나곤 하는 표 응집 현상과 함께 부산 북갑 출마를 선언하고 내려간 한동훈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원 배지를 달고 국힘에 복당하길 희망하는 한동훈 전 대표는 이미 전재수, 김경수 등 자신의 상대도 아닌 민주당 후보들을 겨냥하면서 벌써 부산·경남 선거에 관여하고 있다. 만약 6월 3일 밤 한동훈이 힘을 발휘한다면 그건 묘한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 장동혁 체제는 ‘우리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정치 생명 연장을 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힘을 발휘할수록 적대자 장 대표의 입지가 강화된다. 한동훈 패러독스(역설)가 발생하는 것이다. 동지에서 등 돌린 장동혁-한동훈 둘은 묘하게 흥망을 함께하는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8개월 된 장동혁 체제는 반론의 여지 없이 수렁에서 헤매고 있다. 이런 국힘은 민주당에 지독한 ‘야당 복’처럼 비치곤 한다. 하지만 야당 복이기만 할까. 요즘 민주당에서 오만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 반복되는 전과 경력자 공천, 일방통행 국회, 진보 진영에서도 문제 삼는 낙하산 인사가 그렇다. 허우적대는 야당의 존재란 결국 민주당에 정치적 긴장을 풀게 해 미래의 업을 쌓도록 하는 일일 수 있다. 폭주하는 여당과 무기력한 야당, 그러면서 1, 2당 지위를 번갈아 나눠 맡는 두 정당을 그동안 ‘적대적 공생’ 관계라 불렀다. 하지만 요샌 한술 더 떠 ‘적대적 동반 추락’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국힘 주요 후보들은 당 대표를 왕따시킨 지방선거를 도모하고 있는데, 전무후무한 일이다. 퇴행적이라 비판받는 한국 정치가 이제 이런 지경으로까지 뒷걸음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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