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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소설가는 오늘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역사 속 하루를 발굴해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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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년 12월 4일 종묘의 터를 잡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2/03/132897164.1.jpg)
깜짝 놀랐을 때 흔히 “혼이 나갔다”, “넋이 빠졌다”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말하는 ‘혼’과 ‘넋’은 바로 혼백(魂魄)을 뜻한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넋(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혼은 영혼, 백은 육신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혼은 사당에…
![1400년 11월 13일 냉혹한 군주, 태종 즉위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1/12/132756163.5.jpg)
태종 이방원이 즉위했다. 태종은 스스로 왕위를 쟁취한 인물이다.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건설에도 앞장섰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당시 개경에 남아 가족들을 지켜냈고, 새 왕조 수립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를 냉정하게 해치웠다. 개국 이후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건너가 신생 국가에 대…
![1435년 10월 21일 평순, 죽음을 면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0/22/132615473.5.jpg)
형조(刑曹·사법과 범죄자의 형벌 집행 등을 맡아 보던 관청)에서 의원 평순(平順)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가 올라왔다. 평순은 동지중추원사 설순(偰循)을 치료하다 뜸을 잘못 놓아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세종은 “참형은 과하다”며 곤장 100대를 명…
![678년 10월 2일 매국노 예군 묻히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0/01/132506262.5.jpg)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했을 때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달아났다. 웅진성은 예씨 일족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백제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생각하고 의자왕과 태자를 체포해 당나라에 바쳤다. 앞장선 사람은 예씨 형제였다. 좌평 예군과 웅진방령 예식진은 이 공으로 당의 벼…
![1460년 9월 11일 신숙주, 여진 정벌 승전보를 알리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9/10/132363045.1.jpg)
조선 초기, 북방 문제는 큰 골칫거리였다. 세종은 4군과 6진을 개척했다. 이 말은 여진의 땅을 빼앗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조선은 여진과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세종 다음인 문종 때에는 여진과 내왕이 없을 만큼 찬바람이 불었다. 세조 집권 당시 건주여진의 추장 이만주가 내조를…
![568년 8월 21일 진흥왕, 황초령에 순수비 세우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8/20/132221837.4.jpg)
신라 진흥왕은 영토를 크게 넓힌 정복 군주였다. 그는 확장된 땅을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 비석을 세웠다. 창녕,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서 각각 비석이 발견됐다. 창녕비를 제외하면 다른 세 비석은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왜 이런 곳에 비석을 세웠는지 궁금증을 불러일…
![1935년 8월 1일… 여성 의병장 윤희순 숨지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30/132101215.5.jpg)
윤희순은 조선시대 첫 여성 의병장이다.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윤희순은 1875년 16세의 나이로 화서학파 유제원과 결혼했다. 화서학파는 이항로를 스승으로 모시는 학파로 위정척사 운동에 앞장섰다. 일본은 1895년 낭인들을 동원해 경복궁을 기습한 뒤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친러파로 기운 …
![660년 7월 11일 신라군-당나라군 만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09/131970506.5.jpg)
백제 정벌에 나선 신라군은 660년 음력 7월 11일에 백제의 수도 사비성 앞에서 당나라 군대와 만났다. 두 군대 모두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왔는데, 신라군은 약속한 날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참이었다. 앞서 당나라군은 13만의 대군으로 전선 1900척에 나눠 타 2, 3일 만에 한반도…
![918년 6월 16일 궁예가 살해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6/18/131836367.1.jpg)
궁예는 흙수저였다. 과부의 아들로 태어나 먹고살 길이 막막해 승려가 됐다. 혼란한 시대를 만나 밑바닥 군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능력과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시대를 이끌고 나갈 높은 뜻도 세웠다. 궁예는 믿을 수 있는 동료를 만들고 무리를 이끌며 전공(戰功)을 세웠다. 궁예는 치면…
![943년 5월 29일… ‘포용의 리더십’ 왕건, 세상 뜨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28/131703505.5.jpg)
고려 태조 왕건은 음력 5월 초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왕건은 5월 20일에 왕규 등 대신들을 불러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한나라 문제가 유언에서 말한 바 있다. ‘천하에 태어난 것들 중 죽지 않는 것은 없다. 죽는 것은 천지의 이치요, 만물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애석해할 것이 아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의 유래[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07/131558631.5.png)
5월 8일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버이날’이다. 하지만 이날이 처음부터 ‘어버이날’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3년 3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기존의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꾼 것이다. 매년 어머니날마다 “아버지날은 없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일면서, 결국 부모 모두를 기리는…
![1388년 4월 18일 요동정벌군 출정, 죽음이냐 회군이냐[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4/16/131430101.5.jpg)
고려의 실권자 최영은 일찍부터 명나라를 싫어했다. 명나라가 원나라 때 쌍성총관부가 다스렸던 철령 이북을 통치하겠다고 통지를 하자 최영의 뚜껑이 열려버렸다. 최영은 우왕과 상의해 요동(랴오둥) 정벌에 나서기로 한다. 이에 고려 조야는 발칵 뒤집혔다. 원나라를 북쪽 사막으로 밀어내버린 명…
![1592년 3월 27일 거북선, 대포를 시험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3/26/131288728.5.jpg)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재난이 벌어지기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음력 3월 27일. 갑자기 벼락출세해 전라좌수사에 앉은 이순신은 거북선이라는 새로운 전함의 시험에 나섰다. 맑고 바람도 없어서 새 전함을 테스트하기 좋았던 이날, 거북선에서 대포를 쏘는 훈련이 이뤄졌다. 거북선은 조선 초에…
![관왕묘에 제사 올렸던 경칩… 명의 ‘조선 패싱’과 선조의 의지[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3/05/131152688.1.jpg)
3월 5일은 24절기 중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이날에 조선에서는 관왕묘에 제사를 올렸다. 가을이 되면 상강 때 또 제사를 올렸다. 관왕묘는 조선 여러 곳에 세워졌는데, 남관왕묘는 명나라 유격장 진인(陳寅)이 1598년에 세웠다. 전쟁 중에 관우가 나타나 승리를 이끌었다는 이유…
![1290년 2월 카단의 침략… 유언비어에 흔들리지 않은 허공[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2/12/131019038.5.jpg)
1287년에 몽골의 동방을 맡고 있던 옷치긴 왕가의 나얀이 쿠빌라이 칸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나얀은 두 달 만에 쿠빌라이에게 사로잡혔고 바로 처형됐다. 이 반란은 그렇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애초에 이 반란은 쿠빌라이가 요동 지방을 다스리는 동방왕가의 권한을 축소시키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