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징병제로 회귀하는 유럽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6일 23시 18분


첨단 무기의 경연장이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전투의 기본은 병력 확보라는 게 새삼 확인되고 있다. 무기가 아무리 좋아져도 운용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드론이나 미사일로 적을 초토화시킨 뒤 실제 영토를 점령하는 건 군인들 몫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사자는 늘어가는데 빈자리가 안 채워지면 부대원들 사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양측 모두 병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초기 수혈했던 바그너 용병이 바닥나자 북한군을 파병받았고, 우크라이나는 환갑이 지난 남성들까지 입대시키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4년째 전쟁을 지켜보는 유럽 국가들은 초조하다. 전세가 러시아로 기울어 위협은 더 커졌는데 미국은 유럽에서 발을 빼고 있다. ‘미국 없이 유럽 지키기’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하지만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80년간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며 긴 평화를 누려왔다. 1990년 냉전 종식 후엔 징병제도 대부분 없앴다. 이제야 군비 증강을 시도하지만 국방 예산을 확 올리기도 어려울뿐더러 최신 무기를 도입해 실전 배치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꺼내 든 카드가 징병제 부활이다. 러시아와 가까운 독일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독일은 우리나라(48만 명)와 비슷한 50만 대군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18만 명 수준이다. 독일 국방부는 “징병제 폐지는 실수였다”면서 앞으로 10년간 징병을 늘리고, 예비군을 키워 46만 명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6개월 의무 복무 후 자발적으로 1년에서 최대 17개월까지 추가 복무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크로아티아, 라트비아, 세르비아도 속속 징병제로 회귀했다.

▷북유럽에선 여군 징집이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공격당했던 역사가 있는 나라들인 만큼 위기감이 더욱 크다. 덴마크는 올 7월 여성 징병제를 시작했다. 2027년 도입하려다가 2년 앞당겼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북유럽에서도 여성 징병은 찬반이 뜨거웠다. 하지만 군이 시민사회 구성과 동떨어지면 안 된다는 인식하에 성 중립적 징병제를 도입했고, 젊은 남성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적 한계도 있었다.

▷수십 년간 평화에 젖어 있던 유럽이 징병제를 부활시키고 있지만 지금의 국민은 그때 사람들이 아니다. 무작정 입대를 명령했다간 큰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젊은 세대의 거부감이 유럽 국가들의 고민이다. 독일은 신체검사를 의무화하면서도 통과자를 모두 입대시키진 않고 부족한 인원만큼만 뽑기로 했다. 제비뽑기로 추첨 선발한다. 여성 징병제 역시 형평성 논란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한국은 저출산 시대에 징병제를 어떻게 유지할지 진작부터 고심해왔는데 이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병력 확보#징병제 부활#유럽 안보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