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트럼프 책사’ 배넌의 귀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0일 2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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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집권 당시 백악관 수석 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가운데)이 올해 1월 뉴욕 맨해튼 법정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 정책인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모금 과정에서 횡령을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배넌의 영향력 또한 덩달아 커지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집권 당시 백악관 수석 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가운데)이 올해 1월 뉴욕 맨해튼 법정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 정책인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모금 과정에서 횡령을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배넌의 영향력 또한 덩달아 커지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1953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아일랜드-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버니지아공대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와 하버드대에서 각각 국제안보 및 경영학 석사 학위를 땄다. 골드만삭스 직원, 영화 제작자 등으로 일했고 백인 우월주의로 점철된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트뉴스’를 만들었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선거 캠프 책임자를 맡아 승리를 이끌었다. 2017년 1∼8월 백악관 수석 전략가를 지내며 극단적 반(反)이민, 반무슬림 정책을 주도했다. ‘주군’보다 튀는 행동과 발언으로 다른 참모와 끊임없이 충돌해 쫓겨났다. 2019년 워싱턴 자택 지하실에서 ‘워룸(war room)’이란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한 2020년 대선은 사기”란 주장을 거듭하며 극우파를 선동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트럼프 행정부 초기 뉴욕타임스(NYT), 포린폴리시(FP) 등이 ‘진짜 대통령은 트럼프가 아닌 배넌’이라고 했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미 정계의 핵으로 부상했다. 3일 이뤄진 미 헌정 사상 초유의 하원의장 탄핵 배후에 그가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NYT는 지나친 극우 성향으로 보수 언론의 대표주자 폭스뉴스조차 외면하는 비주류 맷 게이츠 하원의원이 권력 서열 3위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을 몰아낼 수 있었던 배경에 배넌과 ‘워룸’이 있다고 진단했다. 매일 4시간씩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팟캐스트에 뻔질나게 게이츠 의원을 출연시켜 인지도를 높여주고 정치자금과 팬덤까지 몰아준 결과라는 것이다.

공화당 강경파에게 2020년 대선 사기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집권 민주당과의 타협을 중시한 매카시 전 의장은 ‘적’에 불과하다. 이런 매카시 전 의장을 몰아내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돌격대장이 필요하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불법 약물 복용 혐의 등으로 공화당 주류에 낄 수 없는 게이츠 의원이야말로 배넌의 ‘아바타’ 노릇을 하기에 딱이며 배넌 또한 이를 알고 판을 깔아줬다는 진단이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워룸’은 3만6000개가 넘는 미 정치 팟캐스트 중 허위 정보가 가장 많은 방송이다. 배넌은 이곳에서 멕시코 국경지대의 장벽 건설, 시리아 예멘 수단 등 7개 이슬람국 국민의 미국 입국 90일간 금지, 성전환자의 군입대 금지 등 트럼프 행정부 시절 자신이 주도한 정책의 정당성을 거짓 근거를 대며 설파한다.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주도한 앤서니 파우치 전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했다며 그를 참수하자는 망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배넌은 트럼프 지지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일단 개인 비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0년 연방 검찰은 그가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모금 과정에서 거액을 빼돌렸다며 기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그를 사면해 연방 감옥에 갇힐 위험은 사라졌다. 이후 뉴욕주 검찰이 같은 혐의로 다시 기소해 주(州)정부 차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의 주장과 성향은 더 위험하다. 배넌의 전 부인은 그가 쌍둥이 딸을 유대계 학생이 많은 학교에 보내기 싫어했을 정도로 백인 우월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폭로했다. 실제 그는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폭력 사태를 일으켰을 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작은 정부’를 위해 세계 곳곳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시키고 민간 군사업체 용병으로 대체하자고도 외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 반을 넘겼으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갈등 또한 전쟁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배넌 같은 극단주의자가 ‘미 대통령 참모’ 완장을 다시 차고 영향력을 강화한다면 전 세계의 갈등과 긴장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의 커리어가 방송 진행자로 끝나기를 바란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도널드 트럼프#스티브 배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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