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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쿠팡 의장이 1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후보자,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후보자,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후보자, 케빈 헤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후보자 등이 모두 자리했다. 또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앤디 재시 아마존 CEO 등 주요 빅테크 수장도 동석했다.김 의장은 앞서 17일에도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워싱턴 콘래드호텔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석했다. 당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 등이 참석했다. 김 의장이 이틀 연속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사 및 주요 빅테크 수장과 회동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쿠팡의 위상이 미국 현지에서도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의장, 베센트 재무와 이틀 연속 대면…“美 투자 요청”워싱턴 외교가와 재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김 의장은 이날 밴스 부통령 당선인의 주최로 개최된 만찬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밴스 부통령 당선인 측이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밴스 당선인 측이 쿠팡을 메타, 아마존, 오픈AI 등 자국 유명 정보기술(IT) 기업에 맞먹는 중요 기업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특히 이틀 연속 만난 베센트 후보자와 장시간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의 유명 헤지펀드 ‘키스퀘어캐피털’ CEO 출신인 베센트 후보자는 쿠팡에 투자한 많은 미국 유명 투자자를 잘 알고 있다며 장관 취임 후에도 종종 만나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쿠팡이 한국을 넘어 미국 영국 대만 중국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트럼프 2기 행정부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미국 밖으로 생산 시설을 옮긴 유명 기업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쿠팡 같은 글로벌 기업의 미국 투자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이날 김 의장과 주요 장관직 후보자의 면담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김 의장이 미국 2인자인 밴스 부통령 당선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인 트럼프 주니어가 주최한 행사에 연속으로 초청된 것을 두고 쿠팡의 위상 강화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실제 쿠팡은 최근 전 세계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2022년에 대만에서 로켓배송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누적 투자금액이 5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초에는 미국 등 190개국에 진출한 영국의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5억달러(약 6500억 원)에 인수했다.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인도 벵갈루루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사무소를 열고 현지 인재 채용 등에 나서고 있다. 워싱턴 소식통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쿠팡이 한국 및 아시아태평양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사임 의사를 밝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후임자 물망에 오르내리는 피에르 폴리에브 캐나다 보수당 대표(46)는 입양아 출신이다. 16세 때 그를 출산한 생모는 아들을 교사 부부에게 보냈다. 잠시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듯했으나 10대 시절 양부모가 이혼했다. 양부는 이혼 후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폴리에브 대표는 양성평등 내각, 친(親)이민 정책을 편 트뤼도 총리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부르는 등 강경 우파 성향이다. 탄소세 폐지, 반(反)이민, 감세, 친이스라엘 등 그의 정책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유사해 ‘캐나다의 트럼프’로도 불린다. 그는 동성결혼에 호의적이다. “결혼 제도는 성적 취향에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밝혀 왔다. 양부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낙태, 마리화나 사용 등을 찬성한 적도 있다. 반이민, 유로화 폐기 등을 외치는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리스 바이델 공동 대표(46)는 성 소수자다. 스리랑카 출신의 스위스 국적자 자라 보사르트와 살면서 두 아이를 입양했다. 바이델 대표는 혼인 관계가 아닌 커플 또한 법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시민 결합’을 지지한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30)는 이민자 후손이다. 그의 모친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친할머니의 부친은 모로코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이민이 프랑스의 정체성과 영혼을 소멸시킨다”고 외친다.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쉽게 만들고 프랑스 땅에서 태어난 외국인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국적을 부여하는 ‘제한적 속지주의’ 제도 역시 폐지하겠다고 했다. 세 사람이 보여주듯 최근 각국의 극우, 강경 우파 정치인은 기존의 극우 정치인과 상당히 다르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당선인, 장교 출신으로 국민연합의 전신 극우전선을 만든 프랑스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 등은 제1세계의 기득권 백인 남성이다. 이들은 살면서 약자인 적이 없었다. 다만 정계 아웃사이더였기에 견고한 기성 정치의 벽을 깨기 위해 극우 이념을 이용한 측면이 컸다. 반면 ‘소수자 서사’ ‘흙수저 서사’를 보유한 최근의 극우 정치인은 도식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삶에서 약자일 때가 많았고 유력 정치인이 되자 진보 혹은 중도 성향의 정책도 받아들였다. ‘모든 극우 정치인은 성 소수자, 낙태, 복지 등을 반대한다’ 같은 천편일률적인 고정관념이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젊고 언변도 뛰어난 이들의 등장은 극우에 대한 일반 유권자의 반감을 누그러뜨린다. 나아가, 긍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바르델라의 반이민 정책은 자주 ‘인종차별 정당’이란 비판을 받았던 국민연합의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오히려 ‘불법 이민의 폐해가 오죽하면 이민자 후손조차 이민을 반대하겠느냐’는 주장이 먹혀드는 것이다. 저소득 저학력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2인자에 오른 ‘자수성가 서사의 끝판왕’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41)은 인도계 부인 우샤를 통해 논란을 비켜 간다. 지난해 대선 당시 그는 생물학적 자녀가 없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을 고양이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캣 레이디(cat lady)’라고 폄훼했다. “성폭행,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지라도 낙태를 반대한다”는 그의 과거 발언도 문제가 됐다. 비판이 쏟아지자 우샤는 “남편은 채식주의자인 나의 엄마를 위해 직접 채식 요리를 해준다”고 했다.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논점일탈이지만 남편을 가족을 중시하고 인도계 전통도 존중하는 자상한 남자로 부각시켰다. 서사가 있는 정치인은 물건으로 치면 화려한 포장을 두른 상품이다. 다만 포장지가 내용물의 질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이념의 좌우를 떠나 정치인은 정책, 도덕성, 성실성 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치인의 능력보다 개인사가 더 주목받는 현상이 달갑지는 않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의 2007년 작 ‘식코’에는 전기톱 사고로 왼쪽 손가락 2개가 잘린 남성이 나온다. 보험이 없는 그는 병원에서 “중지와 약지의 접합 비용이 각각 6만 달러(약 8400만 원), 1만2000달러(약 1680만 원)”라는 말을 듣는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비용이 덜 드는 약지만 붙이기로 한다. 그의 중지는 새 모이로 버려진다. 민간 건강보험에 의존하는 미국 의료체계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이 영화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4일 뉴욕 한복판에서 대형 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브라이언 톰프슨 최고경영자(CEO)가 루이지 맨지오니(26)의 총격으로 숨졌다. 만성 척추 통증에 시달렸지만 차도를 보지 못한 맨지오니는 범행 이유를 보험금 지급을 꺼리며 환자의 치료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보험업계의 관행에서 찾았다. 맨지오니가(家)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일대에서 골프장 등을 운영한다. 부유층 자제가 ‘돈’ 때문에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점은 보험업계 전반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불만과 불신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미국은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국가 주도의 공공보험이 없다. 지난해 기준 전 인구의 65.4%(약 2억1582만 명)가 민간보험에 가입했다. 50개 주의 연방 체제, 개인 자유와 선택권을 중시하는 풍조, 인종·계층·이민 역사 등에 따라 확연히 갈리는 공공보험에 대한 인식 등이 공공보험 정착을 어렵게 했다는 분석이 많다. 민간보험은 대부분 기업(고용주)을 통한 직장보험이다.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나 대부분 해당 보험사와 계약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혜택을 얻는 구조다. 보험사의 권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오바마케어, 즉 ‘환자 보호 및 보험료 적정 부담법(PPACA)’의 2010년 등장 후 보험사가 치료비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본다. 지급 시기를 늦추거나 지급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경향 역시 짙어졌다. 오바마케어의 목표는 전 미국인의 보험 가입이다. 민간 혹은 공공보험 중 반드시 하나는 가입해야 한다. 또 직장인인데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해당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벌금을 매긴다. 이 제도로 식코 개봉 당시 5000만 명에 달했던 보험 미가입자는 지난해 기준 2600만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보험금 지급액 증가로 과거보다 이윤이 줄어든 보험사들은 “특정 치료 전 반드시 사전 승인을 얻으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는 환자의 치료 포기,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각종 소송, 보험료 인상 등으로 이어졌다. 그 누적된 불만이 공개 살인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표출됐다. 17일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된 맨지오니의 사적 제재는 지탄받아야 마땅한데도 일각에서 그를 영웅 취급하는 이유다. 다만 보험업계를 비판하는 미국인 역시 공공보험 강화로 자신의 보험료가 오르는 것은 싫어한다. 특히 중산층은 보험 미가입자의 보험료를 자신이 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의료체계 개선은 필요하나 그 부담을 내가 지는 건 싫다’는 현실과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이상의 괴리가 상당하다. ‘작은 정부’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집권 1기 당시 재정 부담이 큰 오바마케어 폐지를 추진했다. 당시 하원 다수당이던 민주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진 못했다. 올 10월 대선 유세 때는 “오바마케어는 형편없으나 없앨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 덕에 생애 최초로 보험 혜택을 누린 국민이 많음을 인정한 것이다. 중국과의 패권 갈등, 불법 이민 근절, 우크라이나 전쟁 및 중동 전쟁 종전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현안 앞에서 보험 개혁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다만 지금 손보지 않으면 미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고통과 비용 또한 커질 것이다. 제2, 제3의 맨지오니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신속한 계엄 저지로 한국 민주주의의 우수성이 증명됐지만 현재의 혼란이 계속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특히 한국과 프랑스의 지도자 모두 상대편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과 비슷한 의견에만 매몰되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 자폐’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2009년부터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재직하며 15년간 한국 사회를 속속들이 관찰해 온 세바스티앵 팔레티 기자(50)가 1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의 영어 대면 인터뷰,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퇴진 거부 기자회견이 있은 12일 추가 전화 인터뷰를 갖고 현재의 한국과 프랑스 상황을 우려했다.그는 프랑스 주요 매체 기자 중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한국 및 북한 관련 기사를 써 온 인물로 꼽힌다. 그 또한 “조국 프랑스, 제2의 조국처럼 느끼는 한국 모두 심각한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며 계엄 이후의 극한 갈등과 분열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1962년 이후 62년 만의 행정부 붕괴로 공공 행정이 마비되는 ‘셧다운(shutdown·정부 폐쇄)’ 위기에 처한 프랑스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했다.》두 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극단주의자의 득세, 반대 정파와의 대화 거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만 교류하며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및 확증편향 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15년간 지켜본 한국의 문화경제적 성취는 놀라운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갖고 현 위기를 극복하라고 권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미셸 바르니에 전 프랑스 총리가 이끌었던 행정부가 붕괴된 4일,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 12일 거듭 놀랐을 것 같다. “한국과 프랑스의 지인들이 모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라고 한다. 두 나라의 공통점이 많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세력이 돌파구를 무리하게 찾으려다 현 상황을 자초했다는 점, 기존에 누적됐던 갈등이 ‘예산’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점, 두 나라 모두 지도자에 대한 퇴진 요구가 심상치 않다는 점 등이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다고 보나. “내가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다만 프랑스 상황을 들려주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의사결정권자들이 바로잡을 기회가 많았는데도 잘못된 결정을 거듭했다. 프랑스에서는 6월 말∼7월 초 조기총선이 치러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총선 전부터 그가 속한 집권 연합 ‘앙상블’이 1위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선거를 강행했다. 총선에서 범여권이 2위에 그쳤는데도 1위를 차지한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 3위를 차지한 극우 국민연합(RN) 및 연대 세력과 협력하지 않았다. 1, 3당이 모두 반대하는데도 우파 성향의 바르니에 전 총리를 발탁했다. 민심을 무시한 것이다. 바르니에 전 총리 역시 좌파와 극우가 모두 반대하는데도 공공지출 감축을 골자로 한 2025년 예산안을 밀어붙였다. 이에 반발한 좌파와 극우가 합심해 총리 불신임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고 총리 사퇴를 포함한 행정부 붕괴가 있었다. 현재로선 새 총리가 언제 취임할지 알 수 없다. 위기를 타개할 적절한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또 있다.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마크롱 대통령 또한 “2027년 5월까지의 임기를 지키겠다”며 퇴진 요구를 거부했다. 새 총리 또한 좌파나 극우 진영에서 찾지 않고 바르니에 전 총리와 비슷한 우파 성향 인물을 발탁하겠다며 굽히지 않는다. 재판을 받고 있는 야권 지도자가 ‘대통령 사임, 조기 대선 실시’를 요구한다는 점도 같다. 마린 르펜 전 RN 대표는 2004∼2016년 유럽의회 활동을 위해 배정된 당 자금을 보좌진 급여 등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달 검찰은 ‘징역 5년,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구형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등 5개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치인을 포함한 의사결정권자들은 왜 잘못된 결정을 거듭할까. “‘나만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이 같은 반향실 효과와 확증편향의 단점을 극대화했다. 곳곳에서 음모론을 외치는 선동가 또한 난무한다. 의사결정권자가 정치적 자폐 상태에 빠지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정치인들이 일부 극단주의 세력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각국 중산층이 큰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한순간 빈곤층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크다. 극단주의자들은 이런 중산층의 불안감을 이용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고조시키며 ‘이게 다 저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식이다.” ―한국 일각에서는 내각제로의 개헌 등 이참에 정치 체제를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제도 변경은 ‘마법’이 아니다. 특정 제도가 현실을 모두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분열이 심한 상황에서 다른 제도로 바꾸는 과정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탓하지만 자신 또한 그 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세계 민주주의가 동반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곳곳에서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으로 ‘지구는 둥글다’ 같은 ‘단순한 사실(basic fact)’에 대해서조차 여러 세력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 또한 고조되고 있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언론인은 현재를 기록하는 역사학자라고 생각한다. 진실과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인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현 상황을 방치하면 인권, 자유 같은 인류의 기본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가치는 가졌을 때보다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15년간 겪은 한국은 어떤 곳인가. “한국에서 근무한다고 했을 때 많은 지인이 ‘왜 가느냐’고 했다. 지금은 누구나 ‘멋지다. 나도 가고 싶다’고 한다.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긍정적이나 정작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시선은 부정적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젊은 층은 ‘헬조선’ 같은 말을 쓰며 한국을 떠나겠다고 한다. 한국인은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반드시 자신이 남보다 한 등급은 위에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유례 없는 동료 집단의 압박과 눈치 보기, 스트레스 등이 이에 기인한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이 이뤄낸 문화경제적 성취는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Z세대(Gen-Z)’에 한국의 소프트파워(soft power)는 매우 강력하다. 서구 젊은 층은 한국을 혁신, 새로운 트렌드의 요람으로 여긴다. 이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자신감을 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두 인터뷰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광우병 시위 등으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듯 했다. 2012년 접한 이 전 대통령은 솔직담백한 사람이었다. 15년 전보다 정치 혼란이 훨씬 심해진 지금 많은 한국인 또한 그가 세계 금융위기 등을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당시의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좋았다며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한 해 뒤 프랑스 방문을 앞둔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처음에는 인터뷰 답변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등 다소 딱딱한 분위기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감안할 때 그가 걸어온 삶의 경로가 일반인의 삶과 괴리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북한이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고조되면서 한반도 전체의 긴장도 격화하고 있다. “북한은 제한적 지원만 해주는 중국에 불만이 많았고 미덥지 못하다고 여겼다. 이에 ‘새 스폰서’로 러시아를 택한 것이다. 일종의 ‘위험 감수자(risk-taker)’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신이 상당히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고 여길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더 밀착할 것으로 본다.”세바스티앵 팔레티 佛 르피가로 아시아 특파원19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소르본대에서 역사학을,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유럽연합(EU) 정책결정학을 전공했다. 2009년부터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재직하며 서울, 중국 베이징 및 상하이 등에서 근무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두 사람을 모두 인터뷰했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에서 ‘문고리 권력’을 가질 인물로 극우 케이블방송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에서 진행자로 일했던 나탈리 하프(33)가 떠오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2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그는 휴대용 프린터, 보조 배터리, 종이 등을 들고 항상 트럼프 당선인을 따라다니면서 당선인에 관한 각종 언론 및 소셜미디어 관련 콘텐츠를 즉각 인쇄해 건네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인간 프린터(Human Printer)’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하프는 1991년 캘리포니아주의 보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주내 기독교 대학인 로마나사렛대 학사, 버지니아주의 복음주의 대학 리버티대 석사를 취득하고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의 앵커로 활동했다. 그가 트럼프 당선인과 인연을 맺은 건 2019년이다. 폭스뉴스에 패널로 출연한 그는 자신이 한때 골수암에 걸렸으나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1기 때인 2018년 서명한 임상시험을 폭넓게 허용한 법안 덕분에 치료를 받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트럼프 당선인을 칭송했다. 이 이야기에 반한 트럼프 당선인이 2020년 대선 당시 공화당 전당대회에 하프를 연설자로 초청했다. 하프 역시 2022년 3월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를 떠나 트럼프의 커뮤니케이션 팀에 합류했다. 그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특히 골프 애호가인 트럼프 당선인이 골프를 치고 있을 때 골프 카트 뒤로 달려가 당선인에 관한 각종 언론 보도와 소셜미디어 게시물 등을 전달했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그가 자주 찾는 뉴스 출처에는 극우 성향의 웹사이트 ‘게이트웨이펀딧’이 포함됐다고 덧붙였다.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하프의 충성은 숭배, 추앙 수준에 가깝다고 보인다고 NYT는 평가했다. NYT가 입수한 하프의 편지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 당선인을 “당신은 내게 중요한 모든 것(You are all that matters to me)” “내 삶의 수호자 겸 보호자”라고 썼다. 트럼프 당선인 또한 하프를 ‘스위티(Sweetie)’ 등으로 부르면서 딸처럼 대한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하프의 존재는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백악관에서 잠재적으로 영향력 있는 역할에 나설 준비를 갖췄다고 NYT는 진단했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일대에서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해지는 정보 흐름의 통로 역할, 당선인의 소셜미디어 콘텐츠 생성을 도울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미국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규모도 큰 캘리포니아주의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조9000억 달러(약 5460조 원)다. 미국, 중국, 독일, 일본에 이은 세계 5위로 인도, 영국, 프랑스 GDP보다 많다. 천혜의 자연환경, 실리콘밸리, 할리우드, 스탠퍼드와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같은 명문대를 두루 갖춘 덕이다. 이런 캘리포니아주가 인재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2022, 2023년에만 69만1000명이 떠났다. 테슬라 오라클 HP 팰런티어 등 쟁쟁한 기업도 본사를 다른 주로 옮겼다. 치안 불안, 과도한 규제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강요, 높은 세금과 비싼 생활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많은 이가 그 시발점으로 2014년 주민투표로 통과된 ‘47호 법안’을 거론한다. 이 법안은 초범일 경우 950달러 이하의 절도, 단순 마약 소지 등을 경범죄로 다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감시설 부족, 주 재정 악화 등이 이유였지만 통과됐을 때부터 “범죄만 조장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이후 10년간 주 곳곳에서 약탈과 마약이 판을 쳤다. 사상자만 발생하지 않으면 생계형 경범죄로 처리되니 범죄자 입장에선 거리낄 게 없다. 설사 붙잡혀도 보석금 없이 곧 풀려나는 사람이 태반이다. 시민 불만이 치솟았고 못 견딘 사람은 주를 떠났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47호 법안이 경범죄로 규정한 범죄를 다시 중범죄로 분류하자는 ‘36호 법안’을 발의했다. 5일 대선과 같은 날 실시된 이 법안의 주민투표는 69%의 지지로 통과됐다. 법이 죄를 벌하긴커녕 조장하는 현실에 넌더리를 낸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이 결과에서 보듯 미 진보 진영의 본산 겸 민주당 텃밭이던 캘리포니아주의 민심이 변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고향인 이곳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보다 20.5%포인트 높은 지지를 얻었다. 2016년과 2020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캘리포니아주 지지율은 트럼프 당선인보다 30.1%포인트, 29.2%포인트 높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정치 활동도 해온 해리스 부통령이 캘리포니아주에 연고가 없는 두 사람보다 훨씬 적은 표를 얻은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등을 지낼 때 경찰 예산 삭감 등을 거론했다.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파 유권자를 의식해 화석에너지 등 일부 정책에서 ‘우클릭’을 시도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뼛속까지 진보 성향 정치인, 즉 ‘캘리포니아 리버럴’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국 득표율, 대통령 선거인단 확보 숫자에서 모두 패했다. 민주당 역시 상하원,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에 완패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패배 요인은 여러 개이고 모조리 그의 책임만은 아니겠으나 한 가지 시사점은 얻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 리버럴’이 진보 성향의 일부 지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미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기술 강국’ 한국과 ‘자원 부국’ 겸 지정학적 요충지인 중앙아시아는 서로에게 최고의 협력 파트너입니다. 양측의 민관 교류를 강화할 상설 협의체 신설이 시급합니다.”7일 열린 ‘2024 한반도-북방 문화 전략 포럼: 강대국 경쟁 귀환 하 초국적 연대의 모색’에 참석한 한국과 중앙아시아 주요국 인사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오키드룸에서 열린 이날 포럼에는 왕윤종 국가안보실 3차장, 타메르 살리흐 무랏 주한 튀르키예 대사, 수흐벌드 수헤 주한 몽골 대사, 압두살로모프 알리쉐르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 아르스타노프 누그갈리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 키롬 살로힛딘 주한 타지키스탄 대사, 이스마일로바 아이다 주한 키르기즈공화국 대사, 하사노프 라민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 파파스쿠아 타라쉬 주한 조지아 대사, 강영신 외교부 동북중앙아시아 국장, 한석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김지성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사무총장, 정태인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사 겸 외교부 외교사료편찬위원,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 겸 HK+국가전략사업단장 등이 참석했다.기조 연설자로 나선 왕 차장은 “한국의 혁신 역량과 중앙아시아의 잠재력을 연계해 유라시아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겠다”며 중앙아시아 등 북방 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하자고 촉구했다. 원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등을 보유한 중앙아시아 주요국과 한국의 발달한 정보기술(IT) 산업이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강 교수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 등으로 다자주의 협의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며 “한반도 안정과 평화 구축을 위해서도 중앙아와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아시아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내 연구자 육성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엘도르 아리포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산하 전략지역연구소 소장 겸 전 외교차관은 양측이 협력할 구체적인 분야로 기후위기 및 인구위기 대처를 꼽았다. 심각한 기후 변화로 중앙아시아 곳곳이 사막화와 수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수자원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한국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급속한 노령화와 경제인구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 또한 중앙아시아의 젊은 숙련 노동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옛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진 고려인의 존재 또한 양측 협력을 가속화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알루아 졸드발리나 카자흐스탄 대통령 산하 전략연구소 부소장 역시 △도시계획 △e스포츠 △금융증권 거래 △문화창조 산업 등을 양국의 주요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중앙아시아 주요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몇몇 대도시에 살 정도로 인구 과밀화에 따른 각종 문제가 심각한데 세종, 송도 등에 스마트시티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한국이 도시계획에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 또한 실크로드 시절부터 전세계 주요 물류 수송로였던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한반도-북방 문화 전략 포럼’은 북방 정책 계승을 위해 2021년 출범했으며 매년 포럼을 열고 있다. 올해 포럼 주제는 ‘새로운 시대에의 직면: 강대국 경쟁 귀환 하 초국적 연대의 모색’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1월 5일 미국 대선의 승패는 주요 경합주 중 가장 많은 선거인단(19명)이 걸린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이곳은 미 50개 주 중 천연가스(셰일가스 포함) 생산 2위, 석탄 생산 3위인 화석에너지의 메카다. FTI 컨설팅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주(州) 경제가 가스 산업에서 얻는 이익만 400억 달러(약 54조 원)다. 민주당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1992년부터 2012년 대선까지 내리 6번을 모두 이겼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에게 0.7%포인트 차로 졌다. 4년 후엔 이곳에서 태어난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고향 프리미엄’을 앞세워 1.2%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현재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트럼프 공화당 후보 또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한때 민주당 텃밭이던 펜실베이니아주가 경합주로 바뀐 것은 물, 모래, 화학약품 등을 섞은 액체를 고압으로 분사해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수압파쇄법, 즉 프래킹(fracking)을 둘러싼 민주당 행정부의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출범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내수를 부양하고 중동산 원유 및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을 낮추기 위해 셰일가스 업계를 전폭 지원했다. ‘셰일 혁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곳곳에서 프래킹 붐이 일었다. 그러나 프래킹 과정에서 뒤따르는 지하수 및 대기 오염, 지진 유발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편두통, 비강염, 피로, 천식, 유산 등에 시달린다는 보고서도 속속 발표됐다. 친(親)환경을 표방한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연방정부가 보유한 토지에서는 프래킹 등 모든 신규 시추를 금한다”고 했다. 미국의 에너지 시추는 대부분 민간 소유 땅에서 이뤄진다. 에너지업계와 환경단체의 반발을 동시에 무마하려는 나름의 선택이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해리스 후보는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프래킹을 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 8월 29일 CNN 인터뷰에선 “프래킹을 금하지 않고도 청정에너지를 달성할 방법이 있다. 내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프래킹을 규제하지 않고 어떻게 청정에너지를 실천할 건지, 달라지지 않은 본인의 가치가 뭔지 모호하다. 상당수 유권자가 “발언의 진정성을 못 믿겠다. 전형적인 말 바꾸기”라고 비판한다. FTI 컨설팅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프래킹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펜실베이니아 주민은 12만1000명. 이들의 연봉은 다른 직군보다 훨씬 높은 평균 9만7000달러(약 1억3100만 원)다. 프래킹을 허가한 토지 소유주가 받은 돈은 60억 달러, 세수(稅收) 또한 32억 달러에 이른다. 싫든 좋든 프래킹을 금하면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두 후보 중 누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이길지 모른다. 다만 ‘재집권 시 에너지 규제 철폐’를 외치는 트럼프 후보에게 당당히 맞서려면 해리스 후보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고 본다. “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해 보니 많은 유권자의 생계가 걸린 프래킹을 무작정 도외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입장을 바꾼 건 ‘말 바꾸기’가 아니라 ‘민생 챙기기’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새크라멘토, 오스틴, 탤러해시, 올버니, 해리스버그…. 미국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뉴욕,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州都)다. 오스틴을 제외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텍사스주의 최대 도시 역시 오스틴이 아닌 휴스턴이다. 나머지 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지역에서 주도와 최대 도시가 다르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도농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균형 발전이 이뤄졌다면 작은 도시에 주 정부와 의회를 굳이 둘 필요가 없다. 또한 정보기술(IT)의 발달에도 도농 격차가 쉽게 해소되지 않으며 때론 기술 발달이 격차를 키운다는 점도 알려준다. ‘지방 소멸과 강남 불패의 주요 원인은 KTX 도입’이란 말이 있듯 983만 km²의 광대한 국토를 보유한 미국에서도 전국적으로는 일자리와 인프라가 풍부한 동서부 해안 대도시, 각 주 내에서는 최대 도시로 사람이 몰린다. 도농 격차는 대선에도 영향을 끼친다. 영국 시사매체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6년 미 대선 당시 인구밀도 하위 20% 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득표율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보다 32%포인트 높았다. 2020년 대선 때도 해당 지역 내 트럼프 후보의 득표율은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35%포인트 앞섰다. 즉,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화가 덜 된 곳에 사는 미국인일수록 공화당 후보를 찍을 확률이 높고 그 경향성도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00년 당시 미 농촌 유권자의 51%는 공화당, 45%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올 4월 기준 농촌 유권자의 60%는 공화당을 지지하나 민주당 지지자는 35%로 줄었다. 24년 전 6%포인트였던 양측 격차가 4배 이상 많은 25%포인트로 벌어졌다. 올 6월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농촌 유권자의 공화당 쏠림은 백인에게만 나타난다. 흑인과 라틴계는 거주 지역과 지지 정당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 하지만 백인은 ‘시골 거주=공화당 지지’, ‘도시 거주=민주당 지지’가 뚜렷하다. 이 같은 현상이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고 우려했다.트럼프 후보는 23일 하루에만 올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스미스턴, 키태닝, 인디애나를 찾았다. 각각 2020년 기준 인구가 351명, 3921명, 1만4044명에 불과한 도시들이다. 그가 펜실베이니아주 주민조차 잘 모를 듯한 3곳을 괜히 누볐겠는가. 현재의 대선 방식으로는 스미스턴 주민 351명의 가치가 공화당 텃밭 텍사스주 주민 351만 명,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주 주민 351만 명에 맞먹거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스미스턴은 인구의 99.1%가 백인이고 14.6%가 빈곤층인 전형적인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다. 천연가스로 운영되는 발전소도 있다. 과거 환경 오염 등을 이유로 “프래킹(Fracking·셰일가스 수압파쇄 추출법)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최근 화석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말을 바꾼 비(非)백인 여성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에게 여러모로 불리한 곳이다. 소수 경합주의 시골에 사는 몇몇 유권자가 3억3000만 명 미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 대통령을 결정하는 듯한 모양새가 얼핏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 다만 대선 체계를 바꾸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한데 공화당은 현 체계가 유리하니 개정을 반대한다. 민주당 또한 농촌의 저소득 백인 유권자를 사로잡으려는 노력에 소홀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고 비백인 인구가 훨씬 적었던 20세기의 선거에서는 마냥 불이익만 받은 것도 아니니 지금 와서 바꾸자고만 하긴 어렵다. 시골의 백인 미국인은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 중 누구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지지할까. 정확히 4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승자가 여기에 달렸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적인 매력이 뿜어 나와 세상을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한다. 능력에 비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사회생활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자신이 주위에 어떤 매력을 풍기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능력만 갈고닦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매력을 키워 세상에 알리고 사람이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 책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매력 발산 비결을 30가지로 정리해 알려준다. 호감을 주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매력 교과서’ 겸 ‘성공 인생 지침서’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지지율 상승세를 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이 11월 5일 대선에서 승리할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진다면 크게 두 원인이 꼽힐 것 같다. 우선 그의 빈약한 말솜씨와 언론 대응 능력. 2021년 1월 취임한 그는 같은 해 6월 7일 중남미 과테말라에서 가진 기자회견과 같은 날 현지에서 실시한 NBC방송 인터뷰로 큰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이는 그가 이후 3년간 언론 노출을 꺼리고, 지난달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사퇴한 후 후보직을 넘겨받은 뒤에도 기자회견을 마다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부통령인 그에게 해결이 어려운 불법 이민 의제를 맡겼다. 전권을 줬다지만 사실상 ‘욕받이’ 용도다. 사태 해결을 위해 첫 해외 순방지로 과테말라를 택했지만 당시 회견에서 해법이라고 한 말은 “미국에 오지 말라(Do not come to US)”. 자메이카계 부친과 인도계 모친을 둔 이민 2세이면서 “오지 마”만 외치는 그를 두고 민주당 지지층조차 “저 말밖에 할 게 없냐”고 비판했다. 레스터 홀트 NBC 앵커와의 인터뷰는 ‘폭망’이었다. 홀트 앵커가 ‘남부 국경을 방문할 계획이 있냐’고 묻자 그는 “우리는 국경에 가 봤다(We’ve been the border)”고 했다. 당시 그는 국경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조만간 가겠다” 정도로 답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안 갔으면서 갔다고 우겼다. 또 질문은 “‘당신’이 언제 갈 거냐”인데 정체불명의 ‘우리’를 내세워 “우리는 갔다”고 했다. “미 2인자의 인터뷰 실력이 처참하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이 장면은 아직도 그를 비판하는 ‘밈(meme·인터넷 유행어)’으로 쓰인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런 그가 다음 달 10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와의 첫 TV토론에서 이길 수 있을지 우려한다. 그가 부통령 후보로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주의 조시 셔피로 주지사가 아닌 ‘민주당 텃밭’ 미네소타주의 팀 월즈 주지사를 고른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미 대선은 직선제와 간선제를 혼합한 독특한 구조다. 50개 주별로 승패가 갈리고 승자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그래서 승패가 이미 결정된 양당의 ‘고정 텃밭’ 말고 주요 경합주를 이겨야 전체 538명 선거인단의 과반(270명)을 확보하고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 민주당은 21세기 들어 치러진 6번의 대선에서 2004년 대선을 제외하고 다섯 차례 모두 전국적으로 공화당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런데도 2000년과 2016년 대선에서 졌다. ‘전체 득표’는 앞섰지만 주요 경합주에서 패해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대선의 승자 또한 결국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미시간, 애리조나, 위스콘신, 네바다주 등 7개 경합주가 결정한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에는 7개 주 합계 선거인단 93명의 20.4%인 19명이 걸려 있다. 애리조나주(선거인단 11명)와 네바다주(6명)를 모두 이겨도 이 한 곳과 비교할 수 없다. 도농 격차가 심한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대도시 주민은 민주당, 농촌 유권자는 공화당을 주로 지지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내 탄광촌 스크랜턴이 고향이어서 도시와 농촌을 아우를 수 있는데도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1.2%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또 다음 달 TV토론은 주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열린다. 여러모로 셔피로 주지사가 안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부통령 후보군 면접 당시 셔피로 주지사가 야망을 드러내 ‘팀플레이’를 외친 월즈 후보에게 밀렸다고 전했다. ‘야심가 2인자’는 부담스럽다. 그래도 일단 백악관에 입성한 후 고민할 사안이고 제어 수단도 많다. ‘만만한 2인자’를 골라 대선에서 지면 무슨 소용일까.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한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곳곳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공격이 발생해 전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23일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졸링겐에서 괴한의 흉기 공격으로 최소 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하루 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전 세계 무슬림을 위한 보복으로 IS 군인이 공격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에 관한 별도의 증거 및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25일 독일 경찰은 25일 2022년 12월 독일로 온 시리아계 26세 남성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이 남성은 당국에 자신의 범행을 자수했다. 다만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dpa통신 등에 따르면 23일 오후 9시 45분경 졸링겐의 프론호프 광장에서 열린 도시 설립 650주년 기념 축제에 칼 등 흉기를 든 남성이 난입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로 인해 50대 남성 1명, 60대 남성 1명, 50대 여성 1명 등 총 3명이 숨졌다. 경찰은 “범인이 일부러 희생자들의 목을 노리고 공격했다”고 밝혔다.쾰른 인근의 졸링겐은 인구 약 16만 명의 소도시다. 중세부터 칼 제작으로 유명했고 현재도 칼 제조시설 여럿과 칼 박물관 등을 두고 있다.24일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인근 그랑드모트의 ‘베트야코브’ 유대교 회당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인근에 주차된 차량 2대가 불탔고 이 중 1대가 폭발했다. 차량 폭발로 현장의 경찰관 1명 또한 다쳤다.당국의 초기 수사 결과, 폭발은 차 안에 있는 휘발유 병에서 시작됐다. 특히 이날 당국이 검거한 용의자는 범행 당시 팔레스타인 국기와 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는 유대계를 노린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그는 ‘X’에 “테러 가해자를 찾고 예배 장소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며 반(反)유대주의 공격을 엄벌하겠다고 밝혔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삼권분립, 특히 사법부 독립은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거듭난 주요 원동력으로 꼽힌다. 특히 9명의 연방대법관에게 종신직을 부여해 소신 판결을 보장한 것이 주효했다. 그 뒤에는 자신의 뜻과 달라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 역대 대통령, 물러날 때를 알고 자진 사퇴한 몇몇 대법관의 현명한 결단도 존재했다. 다만 입맛대로 사법부를 좌우하려는 최근의 전현직 백악관 주인, ‘용퇴(勇退)’를 모르는 대법관이 넘쳐나는 요즘 상황을 보노라면 이 아름다운 전통 또한 수명이 다한 듯하다. 우선 조 바이든 대통령.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인 현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갈아엎겠다며 대법관의 임기를 18년으로 줄이는 법안을 발의할 뜻을 밝혔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굳이 공론화한 것은 대법원의 낙태권과 소수계 우대정책 폐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내려진 잇따른 유리한 판결에 반발하는 진보 성향 유권자를 11월 대선 전에 결집시키려는 목적이 크다. 이 시도는 ‘내로남불’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와 민주당은 진보 법관이 지금보다 많았을 때는 딱히 종신제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 놓고 대선 석 달 전 건국 후 248년간 유지됐던 제도를 갑자기 바꾸려 들면 누가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까. 트럼프 후보 또한 내로남불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2016년 2월 보수 성향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숨지자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을 새 대법관으로 점찍었다. 트럼프 후보는 “임기 마지막 해의 대통령이 웬 종신직 임명이냐”며 결사반대했다. 당시 공화당도 의회 다수당 지위를 앞세워 오바마 전 대통령의 뜻을 꺾었다. 그랬던 트럼프 후보는 퇴임 넉 달 전인 2020년 9월 ‘진보의 아이콘’ 루스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숨지자 냉큼 당시 48세의 젊은 보수 대법관 에이미 배럿을 그 자리에 앉혔다. 몇몇 대법관의 처신 또한 볼썽사납다. 9명 중 최선임인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수 차례의 향응, 아내 버지니아의 2020년 대선 결과 부정 논란 등으로 대법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33년간 대법관이었고 여러 구설에 오른 76세 대법관에 굳이 종신을 보장해줘야 하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또한 2020년 대선 불복의 상징 ‘거꾸로 된 성조기’를 자택에 걸어 정치 편향 논란을 일으켰다. 양성 평등 판결 등으로 생전 칭송받았던 긴즈버그 전 대법관 또한 용퇴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사후에도 받고 있다. 그는 2014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퇴를 권유하자 거부했다. 진보 진영은 이런 그가 하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숨지는 바람에 배럿 대법관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고 대법원의 보수화 또한 가속화했다고 불만이다. 일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젊은 진보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진보 대법관 셋 중 최연장자인 70세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지금 사퇴해야 한다”고 외친다. 미국인의 기대 수명이 38세에 불과했던 건국 당시 채택한 대법관 종신제를 시대 변화에 발맞춰 바꾸자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권력자가 이를 정파적 목적으로만 이용하려 들고 대법관 개개인 또한 ‘지혜의 아홉 기둥’에 걸맞게 처신하지 않는다면 임기를 줄인들 무슨 소용일까.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곳이 현 연방대법원인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조청(造淸) 전문업체 대흥식품이 사단법인 벤처기업협회가 유망 기업에 부여하는 ‘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했다고 25일 밝혔다. 그간 정보기술(IT) 기업이 주로 선정됐으나 국내 식품회사 중 3번째로 인증에 성공했다.곡식을 발효해 만든 한국의 전통 감미료 조청은 설탕, 화학 당분 같은 ‘단당류’ 혹은 ‘이당류’가 아니라 ‘다당류’에 속해 우리 몸에 이로운 당분으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설탕 소비를 줄이려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 힘입어 각광받고 있다. 조청 같은 대체 당분을 활용한 잼, 시럽, 캔디, 버터 등도 큰 인기다.1962년 설립된 대흥기업은 2016년 토마토를 활용한 ‘토마토 조청 잼’을 개발했다. 이후 ‘베러댄슈가(better than sugar)’ 브랜드로 다양한 조청 과일 잼을 선보이고 있다. 설탕, 방부제, 첨가제, 색소가 없는 ‘4무(無) 식품’으로 꼽힌다. 이 외 ‘제로칼로리 시럽’ ‘비건 버터’ ‘방탄 스프레드’ 등 다양한 건강 식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이달 7일로 9개월을 맞았다. 전쟁 당일 납치된 240여 명의 이스라엘 인질 중 절반만 풀려났을 뿐 나머지 120여 명은 아직 생사 여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인질 가족 또한 애타는 마음으로 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 지난달 23~27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인질 가족 2명을 만났다. 미국 반도체장비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의 이스라엘 지사에 근무하며 한국을 최소 15차례 방문했다는 예후다 코헨 씨(55),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일본에 23년간 거주하며 한국을 수 차례 찾았다는 에프랏 마치카와 씨(56)다. 병역 의무를 수행 중이던 코헨 씨의 군인 아들 님로드(20)는 전쟁 당일 가자지구 근처 나할오즈 군기지에서 하마스에 납치됐다. 마치카와 씨의 고모부 가디 모제스(80) 씨는 인근 니르오즈 키부츠에서 납치됐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인질 귀환에 적극 협력해 달라는 두 사람의 애끓는 사연을 소개한다.①아들 귀환 기다리는 예후다 코헨 씨“님로드가 풀려날 때까지 나의 투쟁을 멈추지 않겠습니다.”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텔아비브 예술미술관 앞 ‘납치자 광장(Kidnapped Square)’에서 만난 예후다 코헨 씨의 말이다. 이곳은 전쟁 발발 후 매주 토요일 인질 귀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져 일종의 시민 성지(聖地)로 부상했다. 인질 가족을 돕는 각종 단체 또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코헨 씨는 부인 비키 씨와의 사이에 요탐(23), 님로드와 로미 남녀 쌍둥이(20)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님로드의 납치 후 가족 전체가 생업을 버리다시피하고 님로드의 귀환에 매달리고 있다. 코헨 씨는 인질 복귀를 호소하는 민관 합동 대표단에 소속돼 미국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을 방문했다. 올해 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만났지만 “우리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고만 주장할 뿐 ‘귀환’이라는 성과를 못 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코헨 씨는 “아들이 납치되기 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네타냐후 총리가 빨리 사퇴하고 누가 됐든 새 총리가 인질 귀환 협상을 지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지난 9개월 동안 성과를 못 냈다는 것은 네타냐후 총리로는 인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인질 귀환 및 휴전을 촉구하는 각종 시민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15일 20세 생일을 맞는 님로드를 ‘조용하고 수줍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가족 안에서도 ‘평화 중재자(peacemaker)’ 역할을 담당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해외에서 인질 귀환 촉구 연설을 하던 중 딸 로미가 “내가 큰 오빠랑 싸울 때 늘 님로드가 중재자 역할을 해 줬다”고 말했는데 님로드가 가족 내에서도 ‘평화 중재자’인지 자신도 몰랐다며 아들을 그리워 했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반도체 제조 과정의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1999~2022년까지 한국을 15회 이상 방문했다. 그는 “한국을 찾았을 때 이태원도 자주 갔다”며 “2년 전 압사 참사 때 세 자녀의 부모로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2년이 흐른 지금 나 또한 고통받는 부모가 됐다”고 했다.②고모부 귀환 촉구하는 마치카와 씨“이산가족의 아픔이 있는 한국 사회가 인질 가족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것으로 믿습니다.”지난달 23일 ‘납치자 광장’ 인근에서 만난 에프랏 마치카와 씨의 말이다. 그의 고모부 가디 모제스 씨는 전쟁 당일 거주하던 니르오즈 키부츠에서 납치됐다. 고모인 마르갈릿 씨도 같은 날 납치됐지만 최근 풀려났다. 80세 고령이며 시력도 좋지 않은 모제스 씨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지난해 12월 하마스가 부쩍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공개한 것이 전부다.마치카와 씨는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일본식 성(性) 또한 남편을 따랐다. 그는 1990~2011년, 2022~2023년 두 차례를 통해 23년 간 일본에 거주했다. 당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강사, 도쿄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의 문화 담당관(attaché) 등으로 일했다. 그는 “일본에 사는 동안 한국을 수 차례 방문했고 일본에 온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도 자주 가르쳤다”며 분단 역사와 이산가족의 아픔 등 한국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빔밥 또한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마치카와 씨는 “고모부는 10대 시절 내게 수학, 과학 등을 직접 가르쳐줄 정도로 자상한 인물”이라며 “내게는 단순한 가족을 넘어 ‘스승’”이라고 했다. 아시아 사회에서 스승의 의미가 얼마나 큰 지 잘 알지 않느냐며 또렷한 일본어로 ‘센세’라고 했다.이어 “수자원 전문가인 고모부는 인근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폐수를 농업용수로 바꿔 사용하는 법을 가르친 인물”이라며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왜 납치되어야 하느냐”고 했다. 이어 “ 이산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국인이야말로 인질 가족의 아픔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며 “고모부의 납치 후 온 가족이 9개월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마치카와 씨는 “전 세계가 인질 귀환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통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을 인질로삼는 것을 용인한다면 다른 ‘악의 세력’에게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제든지 민간인을 인질로 삼아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격”이라고 강조했다.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0.8에 불과한 한국의 출산율을 우려합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5일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포럼의 연설자로 등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 시 재집권설이 도는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경제사회적으로 강한 복원 능력을 보유했으며 그 비결이 3.0에 달하는 출산율이라고 했다. 정반대에 있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조앤 윌리엄스 미 샌프란시스코 법대 명예교수 등 한국의 저출산을 걱정하는 유명인은 많았다. 서울에서 8000km 떨어진 텔아비브에서도 같은 말을 들으니 한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출산율이 0.65임을 알면 베네트 전 총리가 향후 강연에서 한국 상황을 더 언급할 것이다. 같은 달 23∼27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만난 많은 시민과 정재계 관계자는 묻지 않아도 “자식이 몇 명, 손주는 몇 명”이라며 번창한 후손을 자랑했다. 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의 자금을 유치해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아워크라우드’의 존 메드베데프 CEO는 “네 자녀와 15명의 손주가 있다. 이 중 8명의 손주가 장남 소생”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높은 출산율은 2000년 넘게 떠돌다 간신히 나라를 세우고 아랍국에 둘러싸여 늘 전쟁을 치르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쪽수’에서 밀리면 나라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가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졌다. 다만 이스라엘을 무조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출산율 증가의 주역이 초정통파 유대교도(하레디)인 탓이다. 이들은 평균 6.6명의 자녀를 낳는다. 일반 유대인(2.5명)의 약 세 배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았을 때도 길게 늘어뜨린 구레나룻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쓴 하레디 남편을 따라 7, 8명의 자녀를 데리고 가는 하레디 여성이 많았다. 2009년 75만 명이던 하레디 인구는 2022년 128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인구 945만 명의 13.5%다. 이들의 비중은 2035년 19%로 늘어난다. 잘 알려진 대로 하레디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으며 직업도 없이 정부 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병역과 납세 의무를 지지 않으며 빈곤율도 44%에 달해 사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이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이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폭력 시위를 벌였다. 저출산을 논할 때 늘 등장하는 ‘집값, 사교육비, 일자리, 보육 제도 등을 개선해야 출산율이 오른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모든 정책이 본질적으로 화이트칼라 계층을 겨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보다 양육 환경이 우수하고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이 덜한 북유럽에서도 출산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2013년 1.75였던 핀란드 출산율은 불과 10년 만인 지난해 1.26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즉, 복지제도 확대 같은 정책이 유의미한 인구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제 인구 소멸 위기를 ‘비상사태’로 여기지 말고 상수(常數)로 인정해야 한다. 피해는 어쩔 수 없되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이란 해커들이 최소 70만 건의 이스라엘 의료 기록을 해킹했습니다. 적의 미사일을 막는 ‘아이언돔’뿐 아니라 해킹을 막는 ‘사이버돔’도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정책을 수립하고 관장하는 국가사이버국(INCD·Israel National Cyber Directorate)의 가비 포트노이 국장(55·사진)이 지난해 10월 중동전쟁 발발 후 이란의 사이버 공격이 이스라엘은 물론 이스라엘의 동맹에 대해서도 더 공격적이고 집요해졌다고 경고했다. 그는 31년간 이스라엘군에서 복무한 정보보안 전문가로 2022년 2월부터 INCD 수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24∼27일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사이버위크 2024’ 포럼에서 25일 연설자로 등장한 포트노이 국장은 “지난해 12월 이란의 해킹그룹이 레바논과 인접한 북부 사페드에 위치한 지브 의료센터를 해킹해 70만 건의 의료 기록을 훔쳤다”고 밝혔다. 이어 “각종 국제법과 협약을 완전히 위반했고 무고한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혔다. 인도주의적 한계선을 넘은 행위”라고 분노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 정부기관, 민간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3배 이상 늘었으며 대부분 이란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과 연계된 임페리얼키튼, 머디워터 같은 해킹 조직이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호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오스트리아 등도 공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이런 사이버 공격을 막는 일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며 해결책 또한 국제적이어야 한다”며 각국의 협력을 당부했다. 이번 전쟁에서 위력을 입증한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체계 ‘아이언돔’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공격에 대한 ‘사이버돔’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트노이 국장은 “질병을 막는 백신이 등장할수록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듯이 사이버 보안 기법을 강화할수록 사이버 공격 수법 또한 더 교묘해진다. 따라서 국제 협동과 학습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INCD가 한국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의 사이버 보안 담당 기관과 긴밀히 협력하며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 또한 특정 국가의 힘만으로는 진화하는 사이버 공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INCD는 남부 네게브 사막의 거점 도시 베르셰바에 ‘컴퓨터긴급대응팀(CERT)’이라는 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세계 최초로 해킹에 대한 긴급 구조 번호도 도입했다. 이스라엘 국민은 스마트폰, PC 등에 대한 해킹 우려가 생길 때 언제 어디서든 ‘119’를 눌러 CERT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이스라엘은 동시에 ‘2개의 전쟁’을 치를 여유가 없습니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도심에서 만난 시민 알론 씨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며 한 말이다.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이 약 9개월째로 접어드는 와중에 최소 15만 기의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한 헤즈볼라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그는 “헤즈볼라와 전면전이 벌어지면 레바논과 가까운 북쪽 국경지대는 물론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전역에 미사일이 날아올 것”으로 우려했다. 같은 달 23∼27일 방문한 텔아비브는 곳곳에 고층 빌딩이 가득하고 밤늦도록 해변가에 인파가 북적이는 대도시였다. 다만 식당, 상점, 버스 정류장 등 어디를 가도 하마스에 납치된 사람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가자지구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쟁으로 최소 3만7718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지고 1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 “이, 2개의 전쟁 치를 여력 안돼”… 인질 가족들은 애타는 反戰시위헤즈볼라, 미사일-로켓 15만기 보유, 이 전역 사정권… 이란 개입 가능성도인질 가족들, 귀환협상 지연 우려… “네타냐후 사퇴, 새 총리가 지휘해야”가자지구 사망자 3만8000명 육박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은 이미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에도 추가 악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시된다. 택시 기사 엘라이 씨는 “전쟁 발발 후 관광객 등이 줄어 수입이 반으로 감소했다. 또 전쟁을 치르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스라엘 재무부에 따르면 정부는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후 올 5월까지 최소 697억 셰켈(약 26조 원)을 썼다. 국방비 급증, 하마스로부터 공격당한 지역의 재건 비용 등을 감안하면 추가로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같은 달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또한 7.2%로 지난해(4.2%)를 큰 폭 웃돌았다. 이에 정부 일각에서 세금 인상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오나 국민 반발이 예상된다.● “헤즈볼라 미사일·로켓에 안전지대 없어” 수니파인 하마스와 달리 헤즈볼라는 종파가 같은 이란으로부터 무기, 자금 등을 직접적으로 지원받고 있다. 스스로도 ‘이란 대리인’을 자처한다. 이런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른다면 이란의 개입을 불러와 전선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 또한 지난달 28일 소셜미디어 ‘X’에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전면 공격하면 ‘말살 전쟁(obliterating war)’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후 북부 국경지대를 소개하고 약 6만 명의 주민을 대피시켰다. 이후 헤즈볼라와는 국지전만 이어 왔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최고위 지도자 탈렙 사미 압둘라 등을 공습으로 사살하고 헤즈볼라 또한 맞보복에 나서면서 전면전 우려가 고조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은 거듭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한다. 이에 미 정보 당국이나 몇몇 유럽국은 향후 며칠 안에 양측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지난달 27일 전했다. 텔아비브와 북부 국경지대의 거리는 약 102km. 이스라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에 따르면 헤즈볼라가 보유한 15만 기의 미사일과 로켓 중 절반이 넘는 8만 기는 최대 사거리 100km의 중장거리 로켓이다. 이들로도 얼마든지 타격이 가능하다. 텔아비브, 예루살렘에 이은 제3도시 하이파는 국경에서 불과 27km 떨어져 헤즈볼라가 보유한 사거리 20km의 단거리 로켓 4만 기로도 위협할 수 있다. 최대 사거리 300km인 장거리 미사일 3만 기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이스라엘 전 국토가 헤즈볼라의 공격 대상인 셈이다.● 인질 가족 “우리는 더 뒷전” 인질 가족은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이 그렇지 않아도 지지부진한 귀환 협상에 타격을 미칠까 우려한다. 하마스는 전쟁 발발 당시 240여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납치했고 절반만 풀어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남아 있는 120여 명 중 70여 명이 이미 숨졌고 50여 명만 생존해 있다.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이면 이 50여 명의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크다. 지난달 27일 텔아비브 예술미술관 앞 ‘납치자 광장(Kidnapped Square)’에서 만난 군인 인질 님로드 코헨 씨(20)의 아버지 예후다 씨(55)는 “네타냐후 총리가 빨리 사퇴하고 새 총리가 인질 귀환 협상을 지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전쟁 후 매주 토요일 인질 귀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져 일종의 시민 성지(聖地)로 부상했다. 인질 가족을 돕는 각종 단체 또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또 다른 시민 요시 코헨 씨는 “한때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했지만 전쟁 장기화, 부패 의혹 등으로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요시 코헨 전 모사드 국장이 인질 귀환 협상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새 총리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가자 주민 고통도 계속 가자지구 주민의 고통 또한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3만8000여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는 물론이거니와 고질적인 경제난 또한 심화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쟁 전 45.1%였던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79.1%로 치솟았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 전 가자지구 밖에서 건설 근로자 등 육체 노동을 담당했다. 전쟁으로 가자지구를 벗어날 길이 없어지자 꼼짝없이 실업자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지구 내 지상전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29일 WSJ는 네타냐후 정권이 가자지구 북부에 주민들을 격리할 ‘외딴섬’ 같은 구역을 조성하고 남부에서는 하마스 소탕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상전 지속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더 늘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구호품을 받으려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발포, 해외 구호단체 직원에 대한 오폭, 지난달 인질 4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274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상황에서 추가 민간인 희생은 결국 이스라엘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이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다음 달 4일 영국 총선이 실시된다. 대다수 언론과 여론조사회사는 집권 보수당이 참패하고 제1야당 노동당이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정권을 잡는다고 본다. 승리 정당은 확정됐고 노동당이 하원 650석 중 몇 석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노동당 일각에서는 소속 최장수 총리인 토니 블레어 전 총리(1997∼2007년 재임)를 탄생시킨 1997년 총선의 압승(418석)을 내심 기대한다. 다만 노동당이 승리해도 그 이유는 노동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보수당이 못해서라는 원인 분석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내 실력’이 아니라 ‘상대 헛발질’로 집권했으니 수권(受權) 능력을 입증하라는 요구 또한 빗발칠 것이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62)의 앞날이 녹록하지 않은 이유다. 보수당이 주도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가 2016년 가결된 후 노동당은 내내 집권 기회를 잡았다. 투표 전부터 “값싼 동유럽 인력과 상품 등이 차단되면 교역 비중이 높은 경제에 좋지 않고 수도 런던의 금융 허브 위상도 타격받는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투표를 강행했고, EU와의 이혼 조건을 둘러싼 진통 또한 상당했다. 이를 감안하면 보수당이 이후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노동당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2015∼2020년 당을 이끈 제러미 코빈 전 대표, 후임자 스타머 대표 모두 보수당 공격에만 앞장섰을 뿐 유권자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오랫동안 수권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당내 코빈 전 대표를 따르는 강경 좌파 ‘코빈파’와 블레어 전 총리를 추종하는 온건 좌파 ‘블레어파’의 내분도 격화했다. 노조, 영국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불리는 중북부 유권자를 등에 업은 코빈파는 EU 체제가 저소득층 일자리를 뺏었다며 당론에 반하는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브렉시트 후에도 이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블레어파는 경제 악영향을 우려해 브렉시트를 반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등 대도시 젊은이가 블레어파를 지지한다. 이렇듯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던 스타머 대표가 총리 등극의 기회를 잡은 것은 브렉시트 여진이 여전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고물가 고금리 위협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주택 소유자는 과거 보수당의 ‘집토끼’였다. 하지만 생활비와 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난 이들이 노동당 지지자로 변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다만 스타머 대표의 앞날이 순탄하진 않다. 국제 통계사이트 ‘슈타티스타’의 지난달 조사에서 영국인의 55%는 “브렉시트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올바른 결정’(31%)보다 훨씬 많았다. 브렉시트를 되돌릴 길이 없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그 후폭풍을 완전히 없애고 경제 성장에 매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보여준다. 당내 화합 또한 쉽지 않다. 코빈파와 블레어파는 애초에 반(反)보수당 외에는 접점이 없다. 대(對)이스라엘 정책도 다르다. 특히 코빈 전 대표는 과거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지지 집회에 참석했고 여러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이 여파 등으로 2020년 10월 제명됐다. 당시엔 곧 복귀했지만 지난달 24일 재차 제명됐다. 일부 코빈파는 제명을 주도한 스타머 대표에게 적개심을 보인다. 14년 만의 집권 기회를 잡았지만 경제는 어렵고 당내외 반대 세력 또한 상존하는 상황. 스타머 대표가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까. 그는 최근 “집권 시 핵잠수함 추가 도입” 같은 ‘우클릭’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가 성장과 분배를 결합한 ‘제3의 길’로 장기집권한 블레어 전 총리에 필적할 지도력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고뭉치’ 아들 헌터(54)가 과거 불법으로 권총을 구매하고 소지했다는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이 3일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추문 입막음’ 형사재판에서 지난달 30일 유죄 평결을 받은 지 4일 만에 바이든 대통령 측의 사법 위험이 불거졌다. 이르면 9월부터 헌터의 탈세 혐의 재판도 시작된다. 야당 공화당은 마약, 외국 기업과의 결탁 의혹, 난잡한 사생활 등으로 오래전부터 물의를 일으켰던 헌터가 부친의 후광으로 감옥에 가지 않았다고 공격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헌터의 추가 의혹이 드러나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 11월 대선에서 맞붙는 두 후보가 본인이나 가족의 재판에 휩싸이면서 선거 불확실성도 커졌고, 양 지지층 간 대립도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바이든 “무한 신뢰”, 재판 지켜본 질 여사 헌터는 2018년 10월 바이든 일가의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의 한 총기 상점에서 불법으로 권총을 구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헌터는 마약 중독 이력이 있어 델라웨어주에서 총기를 살 수 없는데도 샀고, 이를 위해 구매 당시 서류에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고 허위로 기재했으며 11일간 불법으로 총을 소지한 후 버렸다는 3개 혐의를 받고 있다. 델라웨어주 윌밍턴 연방법원은 재판 시작 첫날인 3일 이 사건의 유무죄를 평결할 12명의 배심원단을 선정했다. 이후 검찰, 헌터 변호인, 증인 등의 진술이 이어진다. 재판에는 2, 3주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총기 불법 소유는 중범죄다. 3개 혐의 모두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25년의 징역형에 더해 75만 달러(약 10억1250만 원)의 벌금까지 내야 한다. 다만 전과가 없는 초범이어서 실제 징역형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아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갖고 있다”고 헌터를 두둔했다. “나는 대통령이지만 아버지이기도 하다”며 동정론도 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이자 헌터의 의붓어머니인 질 여사는 이날 법정에 직접 나와 재판을 방청했다. 올 9월부터는 헌터가 2016∼2019년 4년간 최소 140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재판도 시작된다. 이 사건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시절 헌터가 ‘아버지의 후광’으로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부리스마의 임원을 지내며 고액 연봉을 받았다는 의혹과 맞물려 있다. 바이든의 대선 가도에는 총기 소유보다 이 사건이 위협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바이든 “트럼프는 유죄 평결 범죄자” 바이든 대통령은 3일 코네티컷주 모금 행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convicted felon)’라고 공격했다. 바이든 대선 캠프는 그간 수차례 트럼프를 범죄자로 규정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는 것은 처음이다. NBC 뉴스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4일 불법 이민자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은 불법 이민자가 일 2500명을 넘으면 국경을 폐쇄하고 1500명 이하로 떨어질 때 개방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일 불법 이민자 수는 4000명대여서 사실상 11월 대선 전까지 국경을 폐쇄하겠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재임 시 국경장벽 건설을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서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양측의 사법 위험에도 두 후보의 지지율은 초접전 양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평결 직후인 지난달 31일∼이달 2일 모닝컨설트 조사에서 ‘오늘 대선이 치러지면 누구를 뽑겠느냐’란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44%를 얻어 바이든 대통령(43%)을 1%포인트 앞섰다. 로이터통신과 입소스가 같은 질문으로 지난달 30, 31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41%로 트럼프 전 대통령(39%)을 2%포인트 격차로 눌렀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