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검찰에서 굴러온, 기본이 안 된’ 금감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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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공공성 있지만 공공재는 아냐
5대 대형은행이 과점체제인지도 의문
예대마진 벌어진 건 정부 탓이 가장 커
금감원장이 극좌파 같은 말 써선 안 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은행은 공공재인가. 공공성을 엄밀히 적용하면 경제 행위는 가족 단위를 벗어나는 순간 다 공공성을 지닌다. 그래서 공공성을 지닌다고 다 공공재라고 하지 않는다. 그 공급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하지 않는 것을 특별히 공공재라고 한다. 군대 경찰 사법 등의 서비스는 국가에 의해 제공되니 공공재다. 우리나라는 전기와 가스마저도 공기업이 제공하지만 은행은 공기업조차도 아니다.

은행은 오래되고 강력한 사적(私的) 기원을 갖고 있다. 사채업이 은행의 원형이다.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은행이 민간 소유인 것은 물론이고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마저 민간 소유다. 미국도 연방정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임명하긴 하지만 Fed를 구성하는 12개 연방준비은행은 민간 소유다. 우리나라 한국은행만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별종인데 민간 소유가 아니어서 독립성이 부족하다.

은행이 과점 체제라는 말은 과연 그런지도 의문이고 언급한 취지가 현실적이지도 않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경쟁력을 위해 대형화가 필요하다면서 합병을 유도해 과거보다 더한 과점 상태를 만든 것은 정부다. 우리나라는 NH농협은행을 포함해 전국적 대형 은행이 5개다. 우리나라와 규모가 비슷한 영국 프랑스 독일도 전국적 대형 은행은 그 정도뿐이다. 그래도 일단 과점이라고 해두자. 대형 은행은 설립 자본이 커 과점을 깨려면 산업자본의 금융계 진입이 필요한데 이를 막고 있는 것도 정부다. ‘은행 돈잔치’에 과점을 들먹이는 건 현 구조 내에서 바로잡아야 할 행태의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치환하고 언제 가능할지도 모르는 구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격이다.

지난해 은행이 예대마진으로 떼돈을 번 건 과점 탓이라기보다는 정부 탓이다. 대출금리는 대개 변동금리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은행은 대출금리를 즉각 올린다. 반면 예금금리는 정기예금의 경우 1년 단위로 금리가 조정되는 고정금리다.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라가는 데 비해 예금금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금리인상기에는 예대마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은행에 예대마진을 공시토록 의무화했다. 대출금리를 올렸으나 예금금리를 올리지 않아 큰 예대마진을 취하는 은행을 압박하기 위함이다. 그런 차에 레고랜드 파동으로 회사채가 소화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은행이 부실대출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예금금리를 높여 수신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돈이 은행으로만 몰려 제2금융권이 감당할 수도 없는 예금이자를 제시하며 수신 경쟁에 나섰다. 정부는 다시 은행에 예금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다. 그 뒤 회사채 사태가 가라앉으면서 은행은 예금금리를 다시 높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다시 예대마진이 벌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벌어지던 예대마진을 더 벌어지게 한 것은 오락가락한 정부다.

정부는 이제 낮춰진 예금금리에 맞춰 대출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예금금리도 대출금리도 다 올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쩌다 낮춰진 예금금리에 맞춰 예대마진을 핑계로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이 줄지 않고 중앙은행이 기껏 기준금리를 올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검사 출신이다. 1960년대 자본주의를 혐오해 은행가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던 극좌파들이나 쓸 법한 ‘은행의 약탈적 행위’ 같은 표현이 검사 출신의 입에서 나와 놀랐다. 검사 출신이 와서 금감원 퇴직자들이 각종 금융회사 임원이나 감사로 가는 전관예우 관행이나 뿌리뽑나 했더니 과거에는 개입하면서도 멋쩍어하던 대형 은행장 인사를 아예 노골적으로 하는 신(新)관치까지 선보이고 있다.

한국이 세계 7대 경제대국임에도 해외에서 큰 프로젝트를 할 때 자국 은행이 없어 외국은행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 고작 담보대출이나 하며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수익을 올린 은행의 돈잔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번 돈이 있으면 은행 경쟁력을 개선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러나 금감원장이 과격한 말로 은행을 금리인상의 고통을 끼치는 장본인처럼 몰아가서는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빗발치는 요구로 물가 잡기가 실패할 수 있다. 금감원장은 금융적으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구별하고 그 비중에 맞게 시비를 가려도 가려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금감원장#검찰에서 굴러온#기본이 안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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