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찾아올 ‘고독한 죽음’… 제도와 인식 먼저 바꾸자[광화문에서/박재명]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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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 정책사회부 차장
박재명 정책사회부 차장
인류는 언제부터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기 시작했을까. 학자들은 구석기 시대인 5만∼10만 년 전 매장 풍습이 정착됐을 것으로 본다. 그 이전에도 죽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했다는 학설이 있지만 검증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오래됐기 때문이다.

장례는 지극히 보수적인 문화다. 장례학 개론서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례 의식은 모든 관혼상제 중 가장 느리게 변화한다”고 적혀 있다. 선사시대부터 이뤄지던 매장이 21세기인 지금도 주요 장례방식 가운데 하나인 점을 감안하면 그게 사실일 것이다. 앞으로 우주 식민지에 정착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는 죽은 자를 안치할 한 뙈기의 우주 땅을 찾아 나설지 모른다.

그런 장례 인식이 최근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게 ‘산분장(散粉葬)’ 도입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안에 사람의 뼛가루를 산과 바다 등에 뿌리는 장례 방식인 산분장을 합법화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부모 유골을 뿌려 버리는 게 무슨 장례냐”는 반대 여론이 커 정부는 산분장에 대해선 불법도 합법도 아니라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그 방침을 바꿔 제도권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개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행동에도 점차 관대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팀이 내놓은 성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안락사 법제화에 찬성한다”는 국민이 10명 중 8명에 가까운 76.3%에 달했다. 5년 전만 해도 안락사 찬성률은 41.4%에 그쳤다.

죽음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가 왜 이렇게 바뀌고 있을까. 핵심 이유로 1인 가구 증가가 꼽힌다. 산분장에 찬성하는 국민은 대략 10명 중 2명(22.3%) 정도지만 혼자 사는 1인 가구만 놓고 보면 10명 중 3명(27.4%)까지 찬성 비율이 오른다. 안락사 역시 마찬가지다. 거동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홀몸노인이나 아픈 자신을 챙겨줄 이 없는 미혼자 등을 중심으로 찬성 여론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이 현대에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라시대 왕 가운데 봉분을 만들지 않고 화장 후 유골을 뿌린 것으로 확인되는 왕은 효성왕, 선덕왕, 진성왕, 경명왕 등 4명이다. 이들은 모두 후손이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때는 자식이 없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30대의 42.5%(2020년 기준)가 결혼하지 않았다. 그 숫자가 300만 명에 이른다. 지금 20∼50대가 노인이 되는 시점엔 혼자 사는 노인이 전국에서 500만 명을 넘어설 수도 있다.

가족 없는 1인 가구가 늘어날수록 죽은 이와 후손 사이의 ‘사회적 소통’이던 장례와 임종의 의미는 흐릿해질 것이다. 죽음은 점점 더 혼자 감당해야 할 ‘개인적 체험’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거기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 현재 20∼50대, 그중에서도 미혼자들은 노인이 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그 어느 세대보다 부유할 것이다. 이들 세대가 노인이 될 때 지금과 같은 ‘용돈벌이 식’ 노인 일자리가 과연 필요할까. 오히려 산분장 합법화와 안락사 법제화 같은 제도 도입과 인식 전환이야말로 장기 저출산 시대의 진정한 노인 대책일 것이다.


박재명 정책사회부 차장 jmpark@donga.com


#고독한 죽음#사회적소통#제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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