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어버이날 선물을 받았다. 색종이로 곱게 접은 카네이션이었다. 함께 건네받은 카드에 연필로 쓴 짧은 감사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엄마 아빠는 나한테 돈이야. 왜냐하면 돈처럼 뭐든지 다 많이 해주니까.’ 그래. 여덟 살이면 돈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갈 나이가 됐지. 기특하면서 한편으로 씁쓸한 양가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웬만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놀이공원을 찾은 이들이 인기 놀이기구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보름 전 어린이날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화제가 됐다. 아이와 롯데월드에 갔는데 ‘매직패스(우선탑승권)’를 쓰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는 얘기였다. ‘돈 주고 새치기하는 게 권리처럼 느껴지고 박탈감이 든다’며 대통령에게 이런 시스템을 막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여론을 살펴보니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우선탑승권을 파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게 당연한데 대통령까지 들먹이면서 유난을 떤다는 반응이 많았다. 돈이 없어서 롯데월드에 가지 못해 박탈감을 느끼는 아이들도 있으니 아예 롯데월드 자체를 없애자는 조롱 섞인 비난도 나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직패스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탄 승객들은 비즈니스석을 보고 불공정하다고 분노하지 않는다. 비싼 값을 치른 대가로 항공사가 별개의 공간에서 별도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매직패스는 놀이공원이 추가로 투입하는 자원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부가가치 창출 없이 ‘새치기할 권리’만 파는 셈인데 그 비용은 일반 입장권(자유이용권)을 산 고객들의 대기 시간으로 치러야 한다. 뻥 뚫린 매직패스 라인을 지나는 사람들도 꽉 막힌 일반 대기줄에 늘어선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수익을 챙기는 건 기업인데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편과 불쾌, 사회적 갈등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된다.
매직패스가 생겨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12년 출간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놀이공원 우선탑승권을 새치기할 권리라고 비판했는데, 이제는 비슷한 상품들이 넘쳐난다. 공항 출입국 수속장에는 유료 패스트트랙이 생겨났고, 일본의 인기 음식점들도 돈을 더 내면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는 패스트패스를 도입하고 있다. 교육(기부입학제), 의료(우선진료권)와 같이 공공성이 강한 영역에서조차 공공연히 드러내놓지 않을 뿐 새치기할 권리를 팔고 있다.
이런 시스템을 사회가 용인하면 기회비용이 따라온다. ‘선입선출’이라는 기본적인 평등의 원칙이 사라진다. 사회 규범을 배워 나가는 아이들은 “돈만 있으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인식한다. 누군가 더 오래 줄을 선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누군가 비싼 값을 지불한 덕분에 누군가는 조금 더 기다리는 대신 싼값에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여길 테니까.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됐다고 해서 공정한 것은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도덕적 가치들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돈이 중요해질수록, 아이들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걸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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