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윤완준]尹, 젤렌스키에게서 배우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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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행동 아닌 말 믿은 우리 정부와 반대
부족함 솔직 인정·감동 연설 용기 북돋아

윤완준 국제부장
윤완준 국제부장
“우크라이나인들은 순진하지 않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강조한 말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휴전협상에 진전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었다. 그는 “협상장에서 긍정적 신호가 들려오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오직 구체적인 결과만 믿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연설 영상은 그의 텔레그램 계정에 올라왔다. 그는 매일 대국민 연설 영상을 올린다. 그의 상징이 된 카키색 반팔 셔츠를 입을 때도 있고 점퍼를 걸치고 나올 때도 있다. 배경은 수도 키이우 도심의 밤 풍경을 합성할 때가 많다. 키이우 내 비밀 벙커 내에서 연설을 찍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에도 그는 “겉만 번지르르한 어떤 말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상황은 전장(戰場)에 있다”고 덧붙였다. 북부에서 군사활동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내놓은 말이다.

‘말 아닌 행동만 믿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행동이 아니라 말을 믿어왔던 현 정부와 정반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등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는 말을 반복해 왔다. 그들이 ‘겉만 번지르르한’ 북한의 말을 믿고 이를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동안 북한은 핵 능력을 증강시켜 왔다. 익명을 요구한 우리 정부 당국자는 정 장관을 가리켜 “어쩌면 그렇게 북한을 모를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진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용기를 북돋운다. 그는 이달 1일 연설에서 “동부 전선은 여전히 매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이미 모든 시험을 통과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도 했다.

동시에 그는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일에는 “점령 도시에서 두려움 없이 거리로 나와 저항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며 “더 많은 이들이 투쟁할 때 점령자들이 더욱 우리를 파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의 투쟁이고 우리 모두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텔레그램 계정에는 그가 벌써 17개국 의회에서 이어가고 있는 화상 연설도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지난달 기립 박수를 받은 미 의회 연설은 이런 말로 마쳤다. “100명 넘는 아이들의 심장 박동이 멈춘 오늘 내 나이도 멈췄습니다. 그 죽음을 멈출 수 없다면 내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각국은 그의 연설 뒤 무기 등 추가 지원을 밝히고 있다. 물론 그가 반복하는 ‘우크라이나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요청엔 미국과 유럽 모두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적어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블룸버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새로운 무기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시(戰時) 위기 대처 리더십’은 윈스턴 처칠을 닮았다. 처칠은 독일의 영국 공습 위기가 시작된 1940년 총리가 됐다. 그는 영국이 처한 위기를 솔직하게 전하면서도 결의를 보이는 연설로 영국인들에게 용기를 줬다. 참전을 주저하던 미국에 ‘영국이 무너지면 유럽 전체가 무너진다’며 군사 지원을 끈질기게 요청했다.

처칠을 존경한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일 “국제적인 위기와 국내 정치·경제·사회 위기는 ‘전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윤완준 국제부장 zeitung@donga.com
#우크라이나#젤렌스키#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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