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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기업인들을 소외시키는 정치 [오늘과 내일/김용석]

입력 2022-01-15 03:00업데이트 2022-01-1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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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비전과 정치 화두가 동떨어진 나라
그 나라의 미래는 얼마나 암울한가
김용석 산업1부장
1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1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간담회를 가졌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 “역대 정부가 규제 합리화를 약속했지만 기업인이 느끼는 체감 규제는 늘어나고 있다. 원인이 뭐라고 보느냐”고 질문했다.

이 후보는 “관료 조직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행정편의주의를 막는 것이 선출 권력의 역할”이라는 취지로 답하며 관료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가장 체감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규제를 떠올리면 엉뚱한 답변으로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재벌 개혁 성과라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취재하면서 만난 부산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연 매출 60억 원 중 10%를 안전 강화에 쏟아붓고도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에 교도소 담장 위에 선 듯한 불안을 호소했다. 그의 불안과 재벌 개혁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해답 실마리를 이 후보의 “중대재해처벌법 실제 적용은 거의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에서 찾았다. 이 후보는 나중에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통상적으로 노력하는 선량한 경영자라면 법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라고 정정했다. CEO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두는 법을 만든 뒤 여론에 따라 선택적 처벌을 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는 정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 기업인들은 ‘통상적 노력’과 ‘선량한 경영자’ 판단 기준의 모호함이야말로 가장 크게 체감하는 규제의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공무원이 낡은 규제를 고치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낡은 생각으로 규제를 만드는 정치가 문제라는 얘기다.

반면 벤처 업계가 요구했던 차등의결권제 도입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벤처 성장 과정에서 창업자 경영권 보호를 위한 이 법안은 민주당 총선 공약이었고 문 대통령이 통과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좌초된 이유는 민주당 박용진 의원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재벌들 민원 요청 사항인 인터넷은행 특례법 등에 이어 논란이 많은 이 법을 왜 처리하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법으로 혜택 보는 상장 전 단계의 벤처기업들이 재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공기업 이사회에 근로자 이사 참여를 의무화하는 노동이사제를 처리하면서는 기업인들이 5차례 반대 성명을 낸 것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노동이사제가 민간 기업에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는 차치하고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에서 노조와 경영진 짬짜미로 생겨날 수 있는 대리인 문제를 입법 과정에서 고민한 흔적은 없다.

최근 기업 CEO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대선 후보들이 제기하는 이슈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후보들은 디지털 전환과 산업 육성을 말하지만 각론에선 기업의 성장을 돕는 데 인색하다. 하락 장에 화가 난 투자자든, 여성가족부에 화가 난 이대남이든, 탈모에 좌절하는 탈모인이든 표를 든 사람들 불만 대응에만 열중한다.

크든 작든 기업은 문제 해결에 가장 효율적인 주체다. 먹고사는 경제 문제는 물론이고 기후위기, 사회 문제 해결이 기업 비전의 우선순위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 언어에서 기업은 그저 하나의 ‘빌런(악당)’으로 취급될 때가 많다. 아마 표를 든 사람들의 반감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국가를 경영해야 할 정치인들의 화두가 성장을 이끄는 기업인들의 비전과 서로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국가적인 비극이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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