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선미]코로나발 인력 대이동

김선미 논설위원 입력 2021-11-19 03:00수정 2021-11-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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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 음식 배달원 전용 앱을 내려받으면 지도 위에 주문이 빼곡하게 표시되면서 실시간 배달 수수료가 뜬다. 낮 시간 기준 한 건당 서울 종로 일대는 4000원대, 강남 일대는 6000원대. 배달 허용 버튼을 누르면 쉴 새 없이 알림이 울린다. 이 앱을 깔아놓고 등교나 귀가 도중에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많다. 국내에서 배달앱 등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는 종사자는 66만 명, 플랫폼을 통한 구직자까지 포함하면 220만 명이다.

▷코로나19는 국내 노동시장 지형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 폐업한 자영업자, 미취업 청년들을 플랫폼이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달원 등 좁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 66만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이 일을 주업으로 삼는다. 한 달에 21.9일을 하루 평균 8.9시간 일하면 월 192만3000원을 번다고 한다.

▷반대로 오프라인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하다. 그동안 영업시간 제한으로 직원을 내보냈던 식당들은 ‘위드 코로나’를 맞아 다시 채용하려 해도 아르바이트생조차 구하기 힘들다.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야근과 특근 수당이 줄어든 중소기업의 숙련 인력들도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택시 업계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사입금 채우기도 어렵던 기사들이 배달원으로 변신하면서 밤마다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법인 택시회사들은 택시 기사 면허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합격자들을 붙잡고 취업을 권하고 있을 정도다.

▷지금 인력 대탈출이 벌어지는 곳은 저임금 업종이다. 플랫폼 일자리는 일하는 대로 곧바로 통장에 돈이 꽂히기 때문에 형편 어려운 중소기업에서처럼 임금 떼일 걱정 없어 좋다고 한다. 근무 시간과 장소를 상황에 맞게 고를 수 있고 다른 일과 병행할 수도 있어 최저임금에 못 미치게 벌어도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차선’, 미래를 향한 도전보다는 대안 없는 현실에서의 체념이 이 일자리에 깃든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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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발 대량 실직 사태를 떠올리면 지금의 플랫폼 일자리는 코로나발 고용 충격을 줄여주는 건 사실이다. 한 플랫폼 종사자는 “실직 후 절망 상태에서 배달원 전용 앱을 켰을 때 수없이 떠 있던 배달 주문 표시가 암흑 속의 등대처럼 반가웠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들이 정규직을 뽑지 않고 필요한 때에만 플랫폼에서 인력을 조달한다면, 배달 일을 조만간 로봇이 대체하게 된다면…. 플랫폼 일자리의 진입장벽은 낮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섬뜩할 수도 있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코로나19#인력 대이동#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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