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자율성 뺏는 사학법 개정, 교육 부실 부른다[동아시론/김경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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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 개정안 강행 처리하려는 與
유일하게 자율성 유지한 인사권까지 침해
자유민주국에선 유례없는 국가의 관여
사립학교 경쟁력 강화로 인재 양성해야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전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전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
더불어민주당이 야당과 사학, 종교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 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교육감이 사학 교사 채용에 간섭하고 사학 통제가 한층 강화되어 사학의 생명줄인 자율성이 크게 위협받게 된다. 사립학교는 자율성이 있어야 기독교·가톨릭·불교 정신을 토대로 한 교육이나 수월성(엘리트) 교육 등 국공립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특색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나름의 경쟁력을 키움으로써 획일화될 수 있는 공립교육을 보완하며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교육입국(敎育立國)을 꿈꾸는 이들은 독자적인 교육비전을 실현하고자 사립학교에 막대한 재산을 출연하는 것이다. 사학의 자율성은 학생 선발, 교육 과정 운영, 교직원 인사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1970년대 평준화로 학생 선발권을 잃은 지 오래됐고, 교육 과정도 국가가 정한 틀 속에서 짜고, 재정 운용도 국가 통제로 재량이 없어졌다.

사학법 개정안은 사립학교가 그동안 유일하게 유지해온 교사 인사권까지 뺏는 것이다. 교사 채용에서 핵심 과정인 필기시험을 교육청에서 거머쥐기 때문이다. 필기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임용시험 성적이기에 설립 이념인 종교적 믿음이나 교육관을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사학 측은 사실상 사립학교 교사 채용권을 박탈하려는 첫 단추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신규 채용의 전 과정을 위탁하는 학교에만 교원 인건비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재정난으로 인건비 지원에 목매는 사립학교를 압박해 인사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민주당과 전교조·교사노조연맹은 채용 비리를 막고, 대부분 사립학교 교사의 인건비를 국고에서 부담하는 만큼 교사 채용에 교육청이 간섭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극소수 사학의 채용 비리를 내세워 사립학교 인사권까지 뺏는 것은 권력 남용이다. 중학교 의무교육과 고교 평준화로 등록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사학의 교육 경비를 오래전부터 국가가 담당하였는데, 새삼 이를 이유로 드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국민 세금을 지원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사립초·자사고·외국어고·예술고 등이 서울의 경우 전체 사립학교의 10%가 넘는데, 이들 사학의 채용까지도 교육청에 필기시험을 강제 위탁하도록 하고 있어 법 개정 의도가 의심받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17개 교육청 중에서 14개를 장악한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건학 이념과 동떨어진 좌편향 교사들을 선발해 사학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 사학법 개정안은 사립학교 교사 외에 직원 징계권까지 교육청이 관할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법적 성격을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했다. 공무원이 아닌 사무직원의 징계에 관해서 교육청이 일일이 간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육청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관선이사를 보낼 수 있는 무소불위 권한까지 갖게 된다. 심의기구로 격상된 학운위는 국공립학교와 똑같이 학교장이나 이사장의 권한에 간섭할 수 있다. 이는 사학 운영의 책임을 지는 학교법인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학운위에 노조활동가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들에 의해 학교 운영이 좌지우지되고 갈등을 빚을 경우 그 피해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이번 법 개정은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국제적인 흐름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공교육 부실을 초래할 것이다. 중학생 17%, 고등학생 42%(서울은 66%)가 다니는 사립학교 쇠퇴는 교육 전반의 부실로 이어지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일 것이다. 국가가 사립학교 교사를 뽑는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에는 없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정부가 사립학교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 사립학교법의 모델이 된 일본은 학생 모집, 회계 운영, 교사 채용에 재량권을 주어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와 경쟁토록 한다. 자율에 기반한 사립학교가 국공립과 다른 교육혁신 모델을 창출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도록 해야 한다.

다수결을 앞세운 ‘의회 독재’에 맞서는 길은 헌법소원을 통해 위헌 결정을 얻어내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학교법인은 설립 취지에 따라 사립학교를 자주적·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고 판시해 사학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 6월 교육감선거에서 사학 자율성을 존중하는 후보를 선출하는 길도 있다.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에 우리 교육의 운명이 달려 있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전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


#사학#사학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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