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와 액셀 동시에 밟는 ‘금리 인상하며 돈 풀기’[동아시론/강명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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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주요국 통화정책 완화 유지
韓, 주요 아시아국 중 첫 정책금리 인상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과열이 배경
성급한 금리 인상 대신 정책공조 절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연 0.75%로 변경했다.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내린 이후 15개월 만이고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주요 아시아 국가 중 정책금리를 인상한 첫 사례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금리를 인상한 것은 경기회복세 지속, 물가 상승 압력, 금융 불균형 누적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추가 인상도 강력 시사했다. 장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언젠가는 금리를 정상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과연 그 시점이 지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크게 확산하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고, 주요국들도 여전히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달 27일 연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추진을 시사했지만, 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최대 고용에 도달하기까지 갈 길이 한참 남았다”며 선을 그었다. 중국도 당국의 빅테크, 부동산, 사교육 규제 등으로 경제지표들이 악화하자 지급준비율 추가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금리 인상 배경으로 경기회복세 지속을 들었지만 7월 들어 코로나19 4차 확산과 방역 강화로 생산과 소비가 두 달 만에 나란히 감소함에 따라 경기회복세도 주춤하는 양상이다. 7월 전산업생산지수는 전월보다 0.5%, 소매판매액지수는 0.6% 각각 감소했고,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도 7개월 만에 하락했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6%로 4개월 연속 2.0% 이상을 기록해 물가 상승 압력을 우려했지만,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개월 연속 5.4%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작금의 물가 상승은 공급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인데, 금리 인상과 같은 수요긴축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하책 중에서도 하책이다.

금리 인상의 진짜 배경은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금융 불균형 해소와 과열된 부동산시장의 안정화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직접 대출 규제보다는 금리 인상이 가계부채 관리에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미국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은 가능해도 금리 인상은 멀었다고 말하는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금리 인상은 경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먼저 거시 건전성 차원에서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금리 인상은 나중에 거시경제 전반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이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집값 급등세는 공급 부족이 근본 원인인 만큼 금리 인상만으로 수요를 억누르기에 역부족이어서 당장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금리 인상이 반드시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경기가 회복기로 접어들 때 정부는 통상적으로 회복세가 꺾일 것을 우려해 선제적 금리 인상에 반대하지만, 이번엔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먼저 집값 잡기의 일환으로 금리 인상을 거론했다. 부동산정책의 계속된 실패로 집값은 폭등하고 정책 수단은 백해무익하니 금리 인상을 통해서라도 부동산시장이 진정되길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기 부양과 취약계층 지원을 하고, 통화당국은 금융 불균형 해소라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상은 지속적인 경기 회복세를 이유로 단행한 것인데,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확장재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한은은 시중 유동성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는데 정부는 돈 풀기에 몰두하는 것은, 자동차 브레이크와 액셀을 동시에 밟는 것과 유사해 통화와 재정의 ‘폴리시믹스(정책조합)’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나온 성급한 기준금리 인상이 가까스로 살아나고 있는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가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공조가 중요하다. 통화당국은 국내외 경제 상황에 맞춰 통화정책 속도를 조절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에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부는 경기 부양 목적의 어떠한 확장재정도 포기하고 코로나19와 금리 인상으로 이중 직격탄을 맞은 취약·피해계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성 현금 퍼붓기를 철저히 선별해 정책 공조와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한국은행#금리 인상#정책공조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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