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상훈]국민 배당이라는 낯선 질문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8일 23시 06분


이상훈 경제부장
이상훈 경제부장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이 꺼내든 ‘국민 배당금’이란 단어를 놓고, 시중에서는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지부터 논란이다. 정치권에서는 거친 언어를 주고받으며 또 하나의 정쟁 소재로 써먹는 분위기다. 경제계에서는 다들 말을 아끼지만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거친 논란과 별개로, 한국 사회가 생각해야 할 질문인 건 맞다. 예상보다 훨씬 많이 걷힌 세금을 국가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정부는 초과 세수의 공동 주주인가

배당은 전통적으로 기업의 언어다. 기업이 이익을 냈을 때 수익 일부를 주주와 나누는 게 배당의 본질이다.

한국 경제사에서 국민 배당이 처음은 아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례가 포항제철(현 포스코) 국민주다. 1968년 설립된 포항제철의 자본 기반은 대일 청구권자금이다. 일제 강점기 조상들의 희생 대가를 전략적 산업 자본으로 투입했다. 국가 명운을 건 모험은 성공해 세계적 철강 기업이 됐다. 정부는 1988년 포항제철을 민영화하면서 공모가 1만5000원으로 국민에게 지분을 쪼개 팔았다. 단순한 주식 공모를 넘어, 국가 성장의 성과를 사회와 국민이 어떻게 나눠 가질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인공지능(AI) 부문 초과 이윤으로 발생하는 국가의 초과 세수를 국민 배당하는 방안 검토”라고 정의했다. 최근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발생한 막대한 법인세 수입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지난해 국내 총법인세가 84조 원이었는데, 올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2곳이 낼 법인세만 120조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초과 세수에서 국가의 지분은 어디까지일까. 반도체 성장의 수혜를 함께 누릴 공동 주주라고 볼 수 있을까. 최근 수년간 정부 태도를 보면 자신 있게 그렇다는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꼭 필요한 전력과 용수 문제조차 제때 해결해 주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반도체 공장을 자신의 지역구에 가져가겠다며 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 지원 경쟁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낡은 규제와 정치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성공을 기업만의 성과라고 할 순 없다. 한국 사회 전체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교육 수준, 인프라, 치안, 산업 생태계, 숙련 노동력이 지금의 경쟁력을 일궜다. 반도체 산업의 성공에는 기업과 노동자, 사회 전체가 함께 이바지한 측면이 존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초과 세수를 어떤 원칙으로 다룰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100조 원대 세수가 매년 안정적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극단적으로 큰 분야다. 그래서 더더욱 원칙이 중요하다.

적어도 복지 지출에 급하게 투입하는 방식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복지가 후순위라는 뜻이 아니다. 필요하면 국가가 빚을 내서라도 책임져야 하는 게 복지다. 하지만 일시적 초과 세수에 기대어 지출을 늘리기 시작하면 복지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초과 세수를 서둘러 소진하는 모습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갈라 먹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필요성은 크지만 뒤로 밀린 분야에 대한 투자를 논의하는 건 어떨까. 대규모 자금이 필요해 미뤄졌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비용 문제 때문에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산업안전 인프라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초과 세수를 실제로 낸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인 납세자 의견 청취는 당사자가 기업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현금 배분 논쟁으로 흘려선 안 돼

국민 배당이라는 표현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현금 배분 논쟁으로 흘려보내기엔 질문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초과 세수는 누구의 돈이며 어디에 써야 하는가. 이제는 한국 사회도 그 원칙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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