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들 “인사권 뺏는 사학법 위헌… 정규교사 대신 기간제 뽑을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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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입법 폭주]사학법 법사위 통과에 반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새벽 국회에서 진행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여당은 사랍학교 교원 선발전형의 일부를 시도교육청에 의무 위탁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새벽 국회에서 진행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여당은 사랍학교 교원 선발전형의 일부를 시도교육청에 의무 위탁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또 헌법소원을 내야 하나요? 학교 하나 운영하는 데 무슨 소송을 이렇게 많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19일 국회 교육위원회, 25일 법제사법위원회를 일사천리로 통과하자 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법인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사고의 경우 재지정 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정부가 ‘2025년 일괄 폐지’를 결정하면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사학법 개정안까지 통과하면 사실상 학교 운영의 의미가 없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법인 관계자는 “사립학교를 공립화하려는 의도라면 차라리 국가가 몰수하든가 정당한 값을 주고 인수하여 국영화하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사립학교들이 신규 교사 선발을 꺼리게 되면서 채용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 “건학이념·학교특성 맞는 교사 채용 불가”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신규 교사 채용 시 필기시험을 치르게 하고 이를 시도교육감에게 의무적으로 위탁하게 한 것이다. 사립학교들은 이 같은 교사 선발이 학생에게도 피해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모든 사립학교는 각자 건학이념과 교육철학에 맞는 교사를 뽑기 위해 필기시험도 다양한 방식으로 치른다. 서울의 한 사립고교 법인은 필기시험에 전공과 교육학뿐 아니라 시사상식을 본다. 태극기를 그리거나 애국가 2∼4절 가사를 쓰게도 하는데 절반 이상이 틀린다고 한다. 해당 법인 관계자는 “전공과 교육학 점수가 높아도 이런 교사가 어떻게 애들을 지도하겠나 싶어 도입한 문제”라며 “하지만 교육청에 위탁하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강원 민족사관고(민사고)는 채용 시 필기시험을 보지 않는다. 서류평가 뒤 임용 후보자가 시범 수업하는 걸 학생, 동료 교사, 교장이 평가하고 면접을 치른다. 민사고 법인 관계자는 “우리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평가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본다”며 “개정안은 개별 사립학교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사립학교들은 사학법 개정 이후 경기도교육청처럼 채용 전 과정의 위탁이 추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정규 교사 대신 기간제 교사 뽑을 수도”

사립학교들은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에 대비해 헌법소원 제기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만약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립학교 중에는 정규 교사 채용을 꺼리는 곳이 나올 수도 있다. 한 사립학교 관계자는 “정규 교사 자리를 기간제 교사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위탁 채용을 거부하는 학교가 생길 수 있다”며 “자칫 기간제 교사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립학교들은 이번 개정안이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사학법 개정안보다 더 후퇴했다고 지적한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교원 임면권을 학교장에게 위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원래대로 재단에 주는 대신 공개전형을 의무화하고 이를 시도교육감에게 위탁할 수 있게 했다.

사립학교 회계의 예산은 현재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자문을 거쳐 이사회의 심사·의결로 확정하게 돼 있지만, 개정안은 학운위 심의를 거치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2005년에도 정부 여당이 추진했지만 법인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 최종적으로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은 사학 운영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많다. 헌재는 2001년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적인 교육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사립학교 운영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요체”라고 결정했다.

24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를 통해 “학운위의 심의기구화, 사립학교 신규 교원 채용의 교육청 위탁 실시 등은 헌법상 보장되는 사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 등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관련 사항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은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사학법 위헌#사학법 법사위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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