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유목민 뮬란에 당나라 군복… 中 여전사 창조”[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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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실사영화 ‘뮬란’은 시대와 배경에 대한 왜곡된 고증으로 논란이 됐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뮬란이 입은 복장은 중국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당나라 시기의 것과 닮았다. 그러나 사실 뮬란은 그보다 앞선 위진남북조 시기 유목민 출신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디즈니 실사영화 ‘뮬란’은 시대와 배경에 대한 왜곡된 고증으로 논란이 됐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뮬란이 입은 복장은 중국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당나라 시기의 것과 닮았다. 그러나 사실 뮬란은 그보다 앞선 위진남북조 시기 유목민 출신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대중문화에서 ‘여성 전사’의 모습을 보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원더우먼’이나 ‘블랙 위도우’ 같은 서양 여성 히어로 영화와 더불어 지난해에는 중국과 초원을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의 영화 ‘뮬란’ 실사판이 개봉돼 관심을 받았다. 서양에는 아마조네스 신화가 있었지만, 동양에서는 딱히 여성 전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없던 차에 애니메이션으로 뮬란을 내놨던 디즈니가 다시 실사판 영화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다만 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동시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대중문화에서 그려진 여전사 뮬란과 당시 중국의 모습은 실제와 얼마나 닮았을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뮬란의 본명을 우리 식으로 하면 화목란이다. 성은 화씨요, 이름이 목란인데 본토 발음을 영어식으로 옮기니 뮬란이 된다. 그 이름은 11∼12세기 중국에서 널리 인기를 얻은 ‘뮬란의 노래(목란사·木蘭辭)’라는 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군역에 끌려가야 하는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딸 뮬란이 전쟁에 나가 12년간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뮬란은 오랑캐를 무찌르고 중국의 황제로부터 상을 받는 히어로로 표현된다. 하지만 실제 뮬란은 지금 중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순수한 한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당시 중국 한족 여성이라면 주로 집에서 가사에 종사했다. 즉, 갑자기 생전 처음 타는 말을 타고 기마부대를 지휘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뮬란이 살았던 시절은 중국에선 북방 오랑캐들이 내려와 경쟁적으로 나라를 세우던 위진남북조 시기다. 북방 유목민이 나라를 세우고 살던 때다. 뮬란의 가족은 이 당시 중국 북방에 내려와 터를 잡고 살던 유목민 출신이었다. 뮬란이 유목민족 집안 영향을 받아 평소 아버지 대신에 말을 타고 양과 염소를 치며 목축을 돕던 효성 깊은 딸이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서양 프레임으로 본 유목민

여기에 또 다른 편견이 개입되니 바로 초원 유목민들에 대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요 악당으로 흉노와 그들의 왕인 ‘선우’가 등장한다. 실제로 흉노는 뮬란이 태어나기 400년 전에 이미 사라진 상태니 ‘선우’가 등장할 수 없다. 그리고 뮬란이 살던 중국 화북의 5호16국 여러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자신들이 흉노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아시아 및 유라시아 나라들은 서로 자신들을 흉노의 후예로 자처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당시 흉노는 유라시아의 롤 모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흉노와 같은 유목민을 악마화하는 것은 근대 유럽과 중국이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에 해당한다. 굳이 역사와 맞지 않는 흉노를 등장시킨 배경은 서양에서 근대 이후 아시아를 비하하기 위하여 흉노와 훈족을 악마화한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中 문화유산 홍보자료 된 영화
6세기 초원 전사의 모습을 복원한 일러스트로 실제 뮬란의 복장도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들 전사의 기마문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솔로비요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 교수 제공
6세기 초원 전사의 모습을 복원한 일러스트로 실제 뮬란의 복장도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들 전사의 기마문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솔로비요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 교수 제공
실제 뮬란이 활동하던 시기 초원 유목국가의 기마문화는 고구려와도 관련이 있다. 영화 ‘뮬란’에서는 흉노 대신에 실제 역사와 부합하는 북방 초원의 ‘유연(柔然)’이 적으로 등장한다. 유연은 고구려와 연합해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북위라는 나라에 대항했다. 그 와중에 유연과 고구려는 협공해서 영토를 확장하기도 하고, 고구려의 발달된 기마술과 마구(말을 타는 도구)가 유연에 전해지며 나아가 동유럽에도 전해질 정도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연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하던 무기들은 동유럽 헝가리 일대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렇듯 뮬란이 활약했던 당시 북방 초원은 악당들이 설치는 곳이 아니라, 동서 문명이 교류되던 문명 교류의 중심이었다.

12세기 중국 남부 지역 푸젠성에서 지어졌던 전통 가옥인 ‘토루’. 영화 ‘뮬란’에서 뮬란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과 유사하지만 토루가 등장한 시점은 뮬란이 살던 시대보다 600년 후로, 차이가 크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12세기 중국 남부 지역 푸젠성에서 지어졌던 전통 가옥인 ‘토루’. 영화 ‘뮬란’에서 뮬란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과 유사하지만 토루가 등장한 시점은 뮬란이 살던 시대보다 600년 후로, 차이가 크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실사 영화의 경우 실제 역사와의 괴리는 더욱 심하다. 영화에서 뮬란의 가족은 마치 도넛처럼 생긴, 가운데 마당을 두고 원형의 건물이 둥글게 둘러싼 집에서 친족들과 모여 산다. 이런 집은 ‘토루’라고 한다. 중국 남쪽인 푸젠성과 광둥, 광시성 등에서 사는 하카(客家·한족 출신으로 중국 남쪽으로 내려가서 살던 사람들)인들이 12세기부터 살던 집이다. 전란을 피해서 남쪽으로 피신한 하카족 사람들이 외적의 침입을 쉽게 막아내고 친족 간에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토루가 등장한 시점은 뮬란이 살던 시대에서 600년이나 지나고 난 다음이다. 그리고 뮬란은 북쪽 초원지대에 살았고, 토루는 덥고 습한 중국 남방 지역에서 사용했으니 지역적으로도 서로 맞지 않는다.

그 밖에 영화에서 뮬란은 당나라 군복을 입고 실크로드 진출을 돕는다. 그리고 당나라식 화장과 복식을 했다. 토루, 실크로드, 당나라의 공통점이 뭘까. 바로 중국이 자랑하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당나라야말로 중국 문화가 가장 융성하고 영토도 넓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영토로만 보면 청나라 시절이 더 넓었다. 하지만 청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만주족(여진족)이고 청나라의 여러 풍속도 만주족과 중국의 문화가 섞여 있었다. 그러니 중국 사람들은 자기 문화의 전성기로 당나라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영화는 여성 전사 이야기로 치장됐지만 그 이면에는 지금 현대 중국이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역사 문화 요소들이 속속 들어 있다.

뮬란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
사실 뮬란 이야기에는 씁쓸한 반전이 있다. 그는 가족을 대신해서 전쟁에 끌려갔고, 오로지 살아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자기와 똑같은 처지의 적, 남의 집 자식을 죽여야 했다. 그가 죽인 수많은 적들의 가족들은 얼마나 슬플 것인가. 그녀의 전공(戰功)은 개인적 원한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싸우고 죽인 것에 대한 대가다. 뮬란이 왕으로부터의 수많은 포상과 벼슬을 버리고 혈혈단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뮬란이 전사가 된 것은 바로 자기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 용맹함의 핵심에 가족이 있을 뿐 그의 성별이 주된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사실 뮬란처럼 여성 전사가 전장을 누비는 경우는 유목사회에 흔히 있었다. 남자들이 모두 전쟁에 나간 사이에 적들이 침입하면 남아 있는 여성들이 가족을 보호해야 했고, 이를 위해 여자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말 타는 기술과 무술을 연마해야 했다. 오히려 ‘여전사’라고 딱지를 붙이며 신기해하거나 선입견으로 그들을 재단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를 가리는 꼴이다.

그 오해의 대표적인 예가 여성 전사의 나라로 불리는 ‘아마조네스’다. 아마조네스는 2500년 전 현재 우크라이나 동쪽에 있었던 사르마트라는 유목민의 일파를 말한다. 이 지역에서 실제로 무기를 함께 묻은 여성 전사의 무덤이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기록처럼 여성들만의 나라는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들이 출정하고 난 후 가족을 지키던 여성들의 모습이 왜곡되어 전해진 것이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 전사라는 말로 성별의 차이를 부각시키거나 초원의 유목민을 맥락 없이 오랑캐로 치부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선입견이 형성될 수 있다. 흥밋거리로 만들기 전에 실제 역사와 사회 배경에 대한 이해가 우선 돼야 하는 이유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세상만사의 기원#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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