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국익’ 설정이 지도자의 책무[동아광장/우정엽]

우정엽 객원논설위원·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 입력 2021-04-27 03:00수정 2021-04-27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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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정책 존재하지 않는 외교안보
눈앞 영향만 따지면 ‘포퓰리스트의 길’
현실정치가 정책목표 좌우하지 말아야
우정엽 객원논설위원·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말 그대로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한자를 쓰는 합리주의에 기반한 의사결정이론은 사회과학에서도 큰 줄기를 이룬다. 경제학을 비롯한 주요 사회과학 학문에서는 우선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하에 이론을 전개하고, 점차 이 합리성이라는 조건을 풀어 가면서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이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려고 한다.

수단이 합리적이라는 것과 목적이 합리적이냐는 것은 두 가지 다른 문제이다. 수단의 합리성은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소비용을 들여 최대효과를 거두는 정책을 택하면 되는 것이다. 목적의 합리성은 전혀 다른데, 그때의 합리성은 세상의 이치에 맞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도덕의 관념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착하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개념이 목적의 합리성에서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뺏으면서 정치적 선전효과를 거두려는 테러리스트의 행위는 수단 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목적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고난의 행군을 이야기하는 김정은 역시 독재권력 유지라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겠다. 본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민들을 고된 삶으로 억압하지만, 그 목적은 어느 기준으로 보아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소수의 목적을 위해 다수가 수단으로 희생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목적은 합리적으로 결정되었으나, 수단의 선택에서 합리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정책결정이론은 정책결정자가 선거에 의해 결정되는 정치체제에서는 제아무리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치적인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 정책을 수용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한다. 정치적 고려가 가용한 수단을 매우 제한적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비민주국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경제발전을 목표로 이야기한다. 경제발전은 합리적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교, 통상 등에서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의 규범에 맞추어 정책을 실행해야만 가능한데, 북한의 정치적 상황은 그러한 수단들을 애초에 배제한다. 목적과 수단이 구분되지 않고 혼란스럽다. 제대로 된 정책이 선택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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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상대들의 반응과 전략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큰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더 그러하다. 여기에 주기적인 선거를 생각해야만 하는 정책결정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단기적인 정치적 영향을 고려하게 된다. 이렇게 장기적 합리성보다 단기적 정치적 영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게 되면 포퓰리스트가 되고, 점점 수단의 합리성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목적이 이미 궤도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단의 합리성보다 목적의 합리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도 목적과 수단 모두 합리적이지 못했다. 미얀마 군부의 그릇된 목적 설정은 폭력적 수단을 택하게 한다.

결국 수단의 합리성과 별개로 목적이 정해지는 방식 역시 중요하다. 외교정책에서 우리는 보통 목적을 국익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단의 합리성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목적이 잘못 설정되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의 폭을 매우 제한하게 된다.

우리의 국익은 국제사회의 질서 속에서 규정할 수 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질서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 구도, 그리고 미국의 강경한 대중정책은 우리가 목적과 수단을 설정할 때 중요한 제약조건이 된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것은 미국과 중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안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겠으나, 그 근본적인 조건이 변화한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 중국을 국제사회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시대, 우리는 더 이상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유한한 사회적 자원을 국가전략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국익이 합리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 설정 과정은 어쩔 수 없이 합리성보다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여기에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책결정자는 바람직한 정책적 목표에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 반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책의 정치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현실의 정치가 정책 목표를 좌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정엽 객원논설위원·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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