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외계인, 오버![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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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나의 물리학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 그 별들이 모여 있는 우주에서 시작되었다. 달은 우주와 지구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우주에 무엇이 있을까?’ ‘우주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존재할까, 아니면 우리보다 더 진화된 우주인이 살까?’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엉뚱한 공상을 하면서 초등학교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류 최초로 인간 3명을 태운 우주선이 달에 도착했다. 그 장면을 흑백 TV로 보았다.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내 삶을 바꾼 장면 중 하나다. 기차도 한번 타보지 못하고 비행기를 가까이서 보지도 못한 나로서는 분명한 사건이었다.

그 영향에서였을까. 그 후 물리학자가 되었다. 지금은 우주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나노의 세계를 연구하고 있다. 나에게 이제 나노의 세계가 우주가 된 것이다. 한 번도 직접 보지도 못한 작은 나노의 세계를 실험실에서 매일매일 상상하고 관찰하고 실험하고 계산하고 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음은 항상 저 거대한 우주로 열려 있다.

얼마 전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관측소의 라디오파 관측 전파 망원경이 붕괴되어버렸다. 1963년에 만들어진 이 전파 망원경은 그동안 전 은하를 대상으로 라디오파 신호를 관측하면서 외계 행성과 지구로 향하는 소행성을 추적해왔다. 과학자들은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라디오파 신호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데, 문명이 발달한 외계 행성이라면 고유한 형태의 전파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과 과학기술은 에너지의 소모량에 의존하므로, 만약 문명이 발달한 행성이 존재한다면 이는 분명 라디오파의 세기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지구의 문명의 단계는 어느 수준일까? 아직 원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 인간은 숲에서 살던 본능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고, 과거의 죽은 동식물로부터 만들어지는 석탄과 기름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문명은 거의 0단계라 할 수 있다.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의 붕괴로 우주와 연결된 하나의 끈이 사라져버렸다. 지금까지 외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직 찾지 못한 것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외계 문명의 정보 전달 방식이 우리보다 높아서 수준 0단계인 지구식 망원경에는 감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의 붕괴로 마치 스마트폰의 전파가 갑자기 유실된 기분이지만, 언젠가 다시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이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물리학#외계인#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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