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한 톨에 우는 아이[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6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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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느 날 숲속을 거닐다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자지러지게 우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참새처럼 팔짝팔짝 뛰면서 울었다. 그 모습이 “마치 여러 개의 송곳으로 뼛속을 찌르는 듯, 방망이로 심장을 마구 두들기는 듯 비참하고 절박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무 밑에서 주운 밤톨 하나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그것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그는 아이가 우는 모습에서 인간의 보편적 삶을 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잃고 비통하게 울지만, 크게 보면 그것이 “밤 한 톨을 잃고 우는 어린아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고 더 크고 더 넓게 세상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를 아들들에게 글로 전한 사람은 유배 중인 다산 정약용이었다. 다산은 1801년 신유박해, 즉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마흔에 시작된 고난은 쉰일곱이 되어서야 끝났다. 억울하고 절망스러운 삶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고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서글픔이 묻어나는 시를 쓰지 않으려 했다. 은유적인 의미에서 그는 밤 한 톨을 잃고 우는 아이가 되지 않으려 했던 고전주의자였다. 유배 중에 구슬픈 시를 많이 썼던 당나라 시인 유자후(柳子厚)를 그가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도 그래서였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인 유자후는 유배를 당했을 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우울하고 슬픈 글을 많이 쓴 문장가였다. 다산은 그게 싫었다.

다산이라고 어찌 괴로움이나 절망이 없었을까. 차고 넘치는 게 괴로움이요 절망이었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18년을 사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불행과 시련을 넓고 크게 보려고 했다. 그러한 거시적 안목이 있었기에 역사에 남는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쓰고 또 썼다. 실학자인 그에게 치유는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나 분출이 아니라 다수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또 쓰는 데 있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밤 한 톨#우는 아이#숲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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