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개론[간호섭의 패션 談談]〈4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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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edextra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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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갑자기 패션 칼럼에서 웬 식물학개론(植物學槪論)이냐고요? 예전 같았으면 패션 하면 연상되는 것들이 보석, 모피 그리고 향수였을 텐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휩쓸고 나니 남은 잔해 속에서 사람들은 희망과 치유의 싹을 틔우려 합니다.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해왔던 모든 활동이 ‘거리 두기’라는 유리벽에 갇히면서 우리도 유리온실 안의 식물이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리얼 라이프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배우가 화분을 보고 “이 집에서 생명체는 너와 나밖에 없구나”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는 공기 정화라는 사명을 띠고 산소를 뿜던 식물이 이젠 내 마음을 정화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반려동물을 맡기는 호텔처럼 반려식물을 관리해주는 호텔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젠 동물이 아닌 식물까지 맡겨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간파한 것인지 그 어느 분야보다도 변화에 민감한 패션계가 식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패션 브랜드 ‘샤넬’은 뜬금없이 신제품 론칭 파티나 패션쇼가 아닌 식물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La Beaut´e De Cultiv´e(아름다움을 키우기)’라는 타이틀 아래 파리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샤넬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 그리고 그 표본들과 식물도감을 전시하고, 천연의 성분들을 추출하는 연구소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이는 동물실험과 무분별한 화학제품의 남용으로 얼룩진 화장품 산업에 경각심을 주는 한편, 식물이 인간의 삶과 얼마나 밀접하고 치유를 하는 존재인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환경예술가인 니콜 덱스트라는 식물로 의상을 만들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있습니다. 꽃봉오리를 꿰어 만든 단추, 짚풀로 엮어 만든 주름치마, 넝쿨을 짜서 만든 레이스 등 섬세하기 그지없어 멀리서 보면 동화 속에 등장하는 공주님의 드레스입니다. 비록 그녀의 식물 의상들은 실제 생활 속에서 입을 수는 없지만 설치 미술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색이 바래고 말라가는 그녀의 식물 의상들을 보고 있자면 쓰레기조차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성과 지속 가능성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죠.

이를 실제 의상에 녹여낸 패션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컬렉션에서 본인이 영국의 시골 마을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찍은 들꽃 사진들을 생생하게 의상에 프린트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자연의 소중함 그리고 여행하면서 느끼는 애틋한 추억 등 요즘 우리가 되찾고 싶어 하는 것들 모두가 그녀의 컬렉션 안에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의상의 원료도 식물에서 왔지만, 앞으로의 지속 가능한 삶의 원천도 식물인 것 같습니다. 건강한 신체뿐 아니라 건강한 마음을 감싸주는 식물을 이제는 더 사랑하고 더 알아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식물학개론’을 공부해 보려 합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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