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부담에도 “목숨 걸고 간다”… ‘소풍 실종 시대’ 길 나서는 학교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9일 04시 30분


[1% 민원에 휘둘리는 사회] 〈2〉 “소풍-수학여행 공교육만 가능한 경험”
학부모 민원-사고책임 부담 크지만 “학교가 제 역할 해야” 목소리
아이들 데리고 직업체험-야외활동
“교원 면책 강화-외부위탁 필요” 지적

⟪서울 한 초등학교의 6학년 학생들은 이달 29일 경기 성남시 한국잡월드로 현장체험학습을 떠난다. 중학교 입학 전에 다양한 진로를 경험해 보라는 취지에서다. 이 학교 교사들 사이에선 “목숨 걸고 간다”는 말이 나온다. 자칫 사고가 발생하면 교사들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고, 빗발치는 학부모 민원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험학습 기본계획 수립부터 사전답사, 안전사고 예방교육 등 지켜야 할 교육청 매뉴얼도 132쪽에 달한다. 심지어 버스 운전사 음주 측정, 타이어 균열 상태 확인까지 교사가 맡아야 한다. 이런 고충에도 교원들은 올해 초 전체회의를 통해 모든 학년의 현장체험학습을 1, 2학기에 나눠 가기로 결정했다. “아침밥도 못 먹는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가 아니면 언제 외부 활동을 해보겠느냐”, “학교가 앞장서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시켜 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민원과 소송, 책임 부담만 남은 일선 학교에서 소풍·수학여행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여전히 현장체험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현장체험학습의 교육적 가치를 이어가려면 법적, 제도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현장체험학습서 교실 수업의 한계 넘어”

18일 동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원 33%는 현장체험학습의 교육적 가치로 ‘교과서 중심 수업의 한계를 넘는 경험과 지식 확장’을 1순위로 꼽았다.

이어 ‘평소 접하기 어려운 현장 체험’(25%), ‘교우 관계 개선과 사회성 함양’(21%), ‘시민의식 및 공공예절 체득’(15%) 등의 순이었다. 이번 설문은 이달 13∼15일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 교원 2065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교실 모둠 활동은 20분 정도에 불과한데 현장학습을 나가면 하루 종일 체험할 수 있는 데다 단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양보하고 성취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며 “다음 날 교실에서 학생들의 표정과 행동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다른 초등학교도 최근 1∼6학년이 모두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지난해는 강원 춘천시 초등학교 체험학습 현장에서 발생한 학생 사망 사건으로 인솔 교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사들의 반대로 체험학습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학교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다시 커졌다.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우리 고장 알기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오전에만 현장학습을 실시하고 점심 식사는 학교 급식으로 해결했다. 학생 이동 거리를 줄여 안전사고를 최대한 예방하고 외부 도시락에 대한 식중독 우려 민원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교과서로만 보던 것을 실제 경험한 뒤 탄성을 질렀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불안 세대’로 불리는 학생들에게 현장체험학습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온라인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겪는 소통과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실 밖 교육이 필수적”이라며 “보완책을 마련해서 현장체험학습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교원의 인식은 여전히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체험학습이 필수 교육인가’라는 질문에 교원 71%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앞서 2011년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84%가 ‘현장체험학습이 교육에 필요하다’고 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 “교원 면책 강화” “외부기관 위탁”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정책본부장은 “지금까지는 교육의 본질을 지키려는 교사들의 헌신으로 체험학습이 가능했다”며 “하지만 안전사고와 관련해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법적 책임을 지우면서 임계점을 지난 것 같다”고 했다.

교총 설문에서 교원들은 현장체험학습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사고 발생 시 교사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책임 부담’(8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학부모의 고소 및 악성 민원’(10%), ‘학생 통제와 지도 어려움’(4%), ‘과도한 행정 업무 부담’(2%) 등의 순이었다.

박소영 교사노동조합연맹 정책처장은 “교사들이 체험학습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와 관련해 고의나 중대 과실 등이 입증되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면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형사소송을 교사 대신 맡는 ‘국가소송책임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시도교육청이 지역별 체험학습 기관을 대상으로 사전 안전점검을 하는 등 각 학교의 행정 업무를 대신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남화성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교육청이 직접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시설과 인력을 파악하는 등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현장체험학습 운영을 아예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교육 활동에는 반드시 교원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 위탁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 독일 등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할 때 ‘안전교육사’가 배치돼 이들이 안전을 책임지고 교원은 따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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