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黨의 자격[여의도 25시/한상준]

한상준 정치부 기자 입력 2020-08-11 03:00수정 2020-08-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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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열린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상준 정치부 기자
“언론이 보기엔 어땠나? 좀 싱거웠지?”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렸던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인사청문회 뒤 만난 민주당 A 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전투력이 생각보다…”라고 했다.

김 청장을 시작으로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열리기 때문에 민주당은 처음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21대 국회 개원 후 첫 인사청문회인 데다 정기국회를 앞둔 여야의 기싸움 전초전 성격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에선 청와대를 휘청거리게 할 결정적인 한 방을 꺼내들지 못했다. 왜일까. 야당 의원 신분으로 공격도 해보고, 이번에는 여당 소속으로 수비에 나섰던 A 의원은 “미래통합당은 팀플레이라는 게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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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청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여당 의원들은 간사인 한병도 의원을 중심으로 사전 회의를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관련 논란이 최대 이슈라고 본 여당 의원들은 “우리가 먼저 오전부터 관련 질의를 하자”고 정했다. 오전 질의에서 야당의 ‘숨겨둔 한 방’이 없다고 판단한 민주당 의원들은 오후부터는 “정책 질의에 집중하자”고 전략을 바꿨다고 한다. “청문회장에 들어오는 것만 봐도 안다. 사전 회의를 하면 우르르 동시에 입장하는데, 통합당 의원들은 시차를 두고 각자 들어오더라. 별다른 회의도 안 했던 것 같다.” A 의원의 말이다.

민주당도 비슷했던 시절이 있었다. 2004년 총선에서 이긴 뒤 내리막길만 걷다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졌다. 비상대책위원회도 겪어 보고, 당 간판도 바꿔 보고, 장외투쟁도 해봤지만 계속 졌다. 심지어 매년 열리는 재·보궐선거에서도 졌다. 패배가 일상이 되면서 “이러다 정말 만년 야당 신세”라는 위기감이 당을 휘감았다. 19대 국회가 반환점을 돈 2014년 5월 무렵, 비로소 새로운 기류가 생겼다. “싸워도 되는 자리에서 제대로 싸우자”는 것이었다.

2014년 7월, 유기홍 박홍근 유은혜 의원은 집요한 공세 끝에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끌어내렸다. 2015년 2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진선미 진성준 홍종학 의원 등은 합숙하다시피 하며 청문회를 준비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에서 불명예 퇴진한 총리 및 총리 후보자는 5명에 달했다.

통합당으로서는 “당시에는 여당이 폭주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민주당과 달리 자료 제출이나 증인 채택에 협조했다”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통합당의 ‘야당 전투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건 이번 대정부 질문에서도 드러났다.

지난달 22일부터 사흘 동안 펼쳐진 대정부 질문이 끝난 뒤, 여당 중진 의원은 “왜 통합당 의원들이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여러 장관을 불러내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이어 “만약 우리가 야당이었다면 법무부 장관이든, 국토교통부 장관이든 한 명만 집중적으로 불러냈을 것이다. 의원 5명 질의 시간을 합하면 60분인데, 어느 장관이 한 시간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세를 이겨낼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단 5분간 발언했던 통합당 윤희숙 의원을 향해 여당 의원들이 득달같이 성토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2017년 대선이 끝난 뒤 통합당 의원들 중 윤 의원이 정공법으로 대여 투쟁에 나선 사실상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다. 막말과 조롱, 억지 주장을 담은 비난과 달리 정책과 대안으로 무장한 논리적 비판은 민주당도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4년 임기의 21대 국회는 불과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대정부 질문과 함께 야당의 무대로 평가 받는 국정감사도 아직 열리지 않았다. 통합당이 전투력을 선보일 기회는 아직 많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전투력으로는 여당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2013년 1월, 민주당이 연이은 패배로 휘청거릴 때 동아일보는 ‘야당이 우뚝 서야 정치가 산다’는 시리즈를 시작했다. 지금 2020년에도 유효하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

#야당#미래통합당#21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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