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덕]신뢰 저버리는 에너지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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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차장
김창덕 산업부 차장
건물주 A가 식당을 하려는 B와 1층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B는 직전 임차인에게 권리금까지 주고 들어왔다.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식당 인테리어도 설계했다. 그런데 건물주가 C로 바뀌었다. C는 B에게 냄새가 나는 식당 대신 화장품 가게를 하라고 요구했다. B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우선 화장품이 팔릴 만한 위치가 아니다. C의 요구를 따르면 지금껏 식당을 차리기 위해 투입한 시간과 비용을 날려야 한다. 이전 임차인에게 준 권리금도 무용지물이 된다. 황당한 일이다.

이런 사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 건물주 C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다. B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는 민간 발전사업자다.

포스코에너지는 2014년 9월 4300억 원에 동양파워 지분 100%를 인수했다. 동양파워는 2013년 정부의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삼척석탄화력발전소 사업권을 따낸 회사다. 포스코에너지는 여기에 토지 매입, 설계, 인허가 작업 진행비 등까지 더해 총 5600억 원을 썼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생겼다.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으로의 전환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4년 전 삼척에 석탄발전소를 세우라던 그 산업부가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협의’지만 민간 기업으로서는 ‘강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변화가 있다면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새 정권은 ‘석탄’에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맞는 얘기다. 석탄발전은 실제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후화된 석탄발전소를 6월 한 달간 정지시켰을 때 큰 반발이 없었다.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계획도 충분한 명분이 있다.

문제는 앞뒤 안 재고 획일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이다. 이미 수년간 준비해온 석탄발전소를 하루아침에 LNG발전소로 바꾸라는 건 따져볼 것도 없이 재산권 침해다. 게다가 포스코에너지가 지으려는 석탄발전소는 미세먼지 배출량을 기존 발전소의 4분의 1로 줄인 최신 설비다. 기술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탈(脫)석탄’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산업부는 포스코에너지가 삼척석탄발전소를 포기하면 올해 말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할 때 다른 지역의 LNG발전소 사업권을 주겠다는 생각이다. 삼척이 LNG발전소 입지가 아니라는 건 산업부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간 손실은 ‘나 몰라라’다. 산업부의 전력산업 담당자는 “포스코에너지가 주장하는 매몰비용 5600억 원 중 80% 이상은 아직 착공 허가를 받기 전인 사업권 인수 비용이다. 정부가 ‘딱지’ 값까지 물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발전소를 지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사업 추진 권리’를 산 것이니 사업이 좌초돼도 책임은 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야 정부가 내준 사업권을 사실상 무효화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백년대계를 세워야 하는 에너지 분야에서.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요구에 당혹스러워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합의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뒤집으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에서였다. 요즘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기업들이 느끼는 감정도 똑같은 종류의 ‘당혹감’일 것이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까지 이제 두 달 남았다. 탈석탄이든 탈원전이든 정책은 국가경영을 위한 수단이다. 그 자체가 목표가 돼선 곤란하다. 석탄발전소를 하나라도 더 줄였다는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정녕 LNG발전을 늘리고 싶으면 평균가동률이 40%도 안 되는 기존 LNG발전소들이나 잘 돌리면 될 일이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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