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돌아온 우지 라면… 전통 대신 ‘K매운맛’ 택했다[이용재의 식사의 窓]

  • 동아일보

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2012년 4월 16일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한 식품회사의 역사를 다시 썼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으로 매운맛의 기치를 높이 세워 K푸드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5년간 1216% 치솟은 주가(2일 종가 기준 120만7600원)로 ‘라면계의 엔비디아’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얻었다. 불닭볶음면을 개발한 김정수 부회장(창업주 고 전중윤 명예회장의 며느리)의 활약담도 즐겁다.

불닭볶음면의 기세가 여전한 가운데서도 삼양식품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누가 뭐래도 1963년 한국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생산한 명예의 삼양인데 상당 기간 고전했다. 1980년대부터 시장점유율은 20%대, 야심차게 내놓은 제품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장수면’(1975년)은 사라졌다가 반짝 복각됐고 ‘포장마차’(1987년)와 ‘열무비빔면’(1994년)도 자취를 감췄다. 역시 최초의 용기면인 ‘컵라면’(1972년)도 과거지사다.

경쟁업체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더 커진다. 롯데공업으로 출범한 농심은 1982년 ‘너구리’를 필두로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등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고전을 속속 배출했다. 후발주자인 팔도가 ‘비빔면’(1984년), ‘도시락’(1986년)으로, 오뚜기가 ‘진라면’(1988년)으로 성공을 거뒀다. 장수면과 컵라면을 먹고 자란 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현재 삼양식품 홈페이지에는 ‘불닭’ 제품군을 비롯해 ‘삼양라면’, ‘맵탱’, ‘짜짜로니’ 정도의 브랜드만 남아 있다. 삼양라면은 1994년부터 몇 차례 리뉴얼을 했으니 짜짜로니(1985년) 정도가 분투 끝에 안착한 셈이다. 소셜미디어 밈(meme)적 챌린지를 원동력 삼은, 전례 없는 세계적 인기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지 불확실하기에 삼양이 다음 제품으로 불닭 수준의 돌풍을 일으켜주기를 바랐다.

드디어 지난해 11월 3일, ‘삼양라면 1963’이 출시됐는데 일단 우지에 튀긴 면만으로도 궁금했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정면돌파해 품목 다변화 및 시장 점유율 향상에 도전하려는 시도구나. 주저없이 사서 계량컵 및 스톱워치로 레시피를 엄수해 끓여 먹었다. 면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이 기존의 라면과 확실히 선을 긋겠다는 의도로 읽혔다.

돌아보면, 1989년 ‘우지 파동’은 부당한 낙인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반갑기 그지 없었던 우지의 매력은 라면을 끓이니 상당 부분 사라졌다. 우골 별첨 수프로 풍성함을 더한 국물은 돼지고기고추장찌개 또는 탄탄면의 맛과 질감을 내는데, 청양고추를 입힌 매운맛과 향이 음미를 방해한다. 매운맛의 기치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는 이해했지만 먹은 뒤 오래 남는 따갑고 쓰린 여운은 반갑지 않았다. 이다지도 매운맛이 과연 한국의 맛일까 싶은 의구심도 들었다.

편의점 기준 1900원으로 기존 제품에 비해 20% 이상 높은 가격 또한 납득은 했지만 라면치고는 부담스러웠다. 불닭볶음면을 제외하면 팔도의 ‘꼬꼬면’(2011년) 정도가 반짝했을 뿐, 라면은 1980년대 고전들이 꽉 잡고 있는 보수적이고 어려운 시장이다. 삼양이 ‘최초’의 명성에 맞게 이 시장을 다시 뚫기에 ‘1963’은 위력이 약한 카드로 보인다. 참고로 모든 호재에도 삼양식품은 점유율 10∼11%대로 여전히 시장 3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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