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산가족 상봉, 보편적 인권문제로 국제공론화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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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만에 북한에 살고 있는 아버지 채훈식 씨(88)를 처음 만난 아들 희양 씨(65)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방 안에 있으면 빛이 날 만큼 잘생겼던’ 남편을 그리면서 모진 세월을 견딘 부인 이옥연 씨(88)는 그가 내민 손을 차마 잡지 못하고 “이제 늙었는데 손을 잡으면 뭐해”라며 회한을 감추지 못했다. 작년 2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어제 금강산면회소는 온통 눈물바다였다.

두 차례 상봉 행사 중 1차로 만난 북측 96가족 141명과 이들의 남측 가족 389명이 22일까지 2박 3일간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고작 6차례, 12시간에 불과하다. 7월 말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12만9698명 중 6만3406명(48.9%)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 6만6292명의 절반 이상은 80세가 넘었다. 2000년 이후 19차례 상봉 행사를 통해 혈육을 만난 사람이 1950명으로 전체 신청자의 1.5%가 고작이다. 이번에 상봉의 기회를 얻은 사람들도 663 대 1의 경쟁을 거쳤다. 이산가족 상봉이 로또 당첨처럼 어렵다.

이번 상봉도 북의 지뢰 도발로 촉발된 남북 대치 상황을 해결하는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어렵게 받아낸 ‘8·25 합의’ 결과지만 단발성 행사에 그칠 우려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에 나올 수 있는 직계 가족의 수도 점점 줄어 어제 부모-자녀 상봉을 한 가족도 5가족뿐이었다. 북한의 김정은은 8·25 합의에 대해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꿔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상봉을 계기로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서신 교환, 상봉 정례화, 상봉 규모 확대, 고향 방문 등 남북이 이미 논의했던 조치들이 성사돼야 할 것이다.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와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8월 유엔의 ‘실향민 처리 지침’을 근거로 추석 방북 성묘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청원했다. 유엔이 무력 충돌, 재난, 인권 유린 등으로 고향과 조국을 떠난 난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1998년 만든 지침이다. 북의 김정은이 이산가족 상봉을 남쪽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인륜에 반(反)하는 일이다. 6·25전쟁에 이은 분단으로 오갈 수 없게 된 남북 실향민들에게 유엔 지침을 준용해 인권 차원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되도록 국제사회에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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