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기간제(계약직) 근로자로 2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의무 전환한다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됐다.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서라며 강행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정규직 전환 비율은 20%도 안 되고 2년 안에 해고되는 비정규직이 쏟아졌다. 선의에서 나온 정책이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 탁상 입법이었다.
고용노동부가 35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최장 4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 대책(일명 ‘장그래법’)을 그제 노사정위원회에 제출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고통의 시간’만 2년 늘리는 사용자 편향적 방안”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경영계는 “비정규직 고용 규제만 강화하고 기업의 부담을 높이는 방안”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가 4년은 해고 불안 없이 근무하면 업무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적어도 현행 ‘2년 규정’보다는 진일보한 차선의 대안(代案)이다.
정부안은 비정규직 보호에 치중해 정규직 과보호를 줄이는 구체적 내용이 미흡하다는 것이 더 문제다. 성과가 낮은 정규직의 일반해고 기준을 마련한다는 점은 눈에 띄지만 노동계의 반발을 감안할 때 노사정위에서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여당도 당정 합의가 없었다며 적극 나서지 않을 분위기다. 노동 유연성은 높이지 못하면서 자칫 경직성만 더 키운다면 노동개혁이 아니라 개악(改惡)이 될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기간제나 시간제, 파견제 등 노동 형태를 다양화하면서 임금과 복지의 격차를 축소하는 추세다. 일본은 올해 모든 업무에 파견근로자 배치를 허용하고 고소득·전문직 기간제 계약 기간을 종전의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독일은 2003년 주 15시간 미만 근무에 세제혜택이 있는 미니잡(mini-job)을 도입해 당시 64%이던 고용률을 2008년 70%대로 끌어올렸다. 특히 여성과 55세 이상 일자리가 늘었다. 최근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홀로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 경제의 선전(善戰)에는 노동시장의 높은 유연성도 한몫했다.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인 장그래처럼, 같은 일을 하고도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가는 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견뎌내지 못해 문을 닫거나 해외로 옮아가 되레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한국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려면 미국이나 북유럽 국가처럼 고용도, 해고도 유연한 노동개혁으로 가야 장그래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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