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광우]세계경제 질서 재편에 대처하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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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서 국제금융 메카로… 상하이의 ‘20년 천지개벽’
한국에 엄중한 메시지 던져
철저하고 지속적인 개혁으로 더 늦기전 경제체질 개선
금융등 서비스 경쟁력 키워야
선진국-신흥국간 중재자로 경제외교 역량도 더 강화를

전광우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석좌교수
전광우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석좌교수
근 25년 전 중국 상하이. 지금은 전 세계에서 초고층 빌딩이 가장 밀집해 있는 푸둥 지역은 허허벌판이었고 도시 중심을 흐르는 황푸 강에는 가끔 돛단배들이 한가히 다니고 있었다. 오늘날 최첨단 전산시스템을 자랑하는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콘크리트 바닥의 허름한 책상에서 간간이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미국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 근무 시절에 처음 방문한 상하이의 모습이다. 당시 출장 목적은 상하이를 국제금융센터로 만들겠다는, 그때로서는 매우 야심 찬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2014년 7월은 현대경제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듯하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 70주년을 맞은 지난달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이 주도해온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중심 체제에 도전하는 신개발은행(NDB)이 설립됐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도 추진 중인 중국이 앞장선 NDB 출범은 국제금융 패러다임 재편의 신호탄이다. 브릭스(BRICs) 신흥국들이 참여한 새 국제기구의 본부는 상하이로 정해졌다.

지난 20년 남짓 상하이가 보여준 놀라운 변신은 엄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국가 운명이 바뀌는 건 잠깐이다. 잘하면 천지개벽할 기적을 만들어 내지만 잘못하면 ‘잃어버린 20년’이 되기도 한다.

세계질서 전환기에 관건은 외교력과 경제력이다. “미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공산당을 잃고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나라를 잃는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만난 현지 고위 당국자의 말이다. 체제 변화 시기의 생존전략은 ‘중심 잘 잡고 힘 키우는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재자 입장에서 적절한 균형을 추구해야 하고 경제외교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대폭 늘리고 국제기구에서의 역할도 적극 확대해 나가야 한다. 개발협력 체제의 선진화는 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과 청년들의 해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글로벌 역학구도 재편 과정에서 살 길은 국가 경제력 강화다. 변곡점에 선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17년간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규모 순위가 세계 11위에서 15위로 밀려났다. 그나마 국제 경쟁력을 가진 소수 대기업을 빼면 내용은 더욱 빈약하다. 재정 금융 통화정책을 총동원한 경기회복 노력은 현 시점에서 필요하나 단기 부양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철저한 개혁을 통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체력 강화가 바른 길이고 개혁의 성패는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중국이 공산주의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나라라면 인도는 민주주의의 비용을 가장 크게 치른 나라다.” 국가 발전은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일관된 정책 추진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얘기다. 반면 끊임없는 정쟁(政爭), 과도한 이익집단 저항과 극단적 사회 갈등의 폐해를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국내외 투자 유치는 일회성 인센티브보다 안정적인 정치 환경,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과 규제,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이 더 중요한 결정요인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금융 등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제조업 편중의 산업구조 개선에 필수 과제다. 이달 초 발표된 서비스산업 육성과 투자활성화 대책은 반길 일이지만 실행이 문제다. 지난 수년간 20여 차례 유사한 대책이 있었다고 볼 때 더욱 그렇다. 국익을 앞세우는 생산적 정치 풍토와 성숙한 시민의식 없이는 정책 효과나 경제 부흥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시장 혁신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펀드 판매, 기업 대출과 지급 결제 기능으로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스마트금융의 새 화폐시대, 이른바 핀테크(FinTech)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 패권은 통화 패권에 좌우되며 미래 통화전쟁의 무기는 전자금융의 힘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ICT 인프라를 지렛대로 삼아 창의적 핀테크 발전과 국가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금융이 약한 경제는 심장이 약한 몸과 같다. 지난 한 해 5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금융권은 위기다. 더 늦기 전에 기본에 충실한 금융 강국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 최근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인 위안화 허브 구축도 활용할 좋은 모멘텀이다. 대통령 단임제 아래서 장기적 국가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단거리 경주보다 계주(繼走), 릴레이로 달리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전광우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석좌교수
#상하이#경제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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