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총조사(2010년)에 따르면 제주도 인구는 53만1905명. 대한민국(4858만293명)의 1.09%다. 지역구 국회의원(3명)도 19대 국회 의석수(300명)의 딱 1%. 도청 관계자는 “사람 수가 행정의 기준이기 때문에 예산 같은 다른 항목도 약 1%로 보면 된다”고 했다.
그 1%의 도지사를 뽑는 데 올해만큼 관심이 쏠린 적이 없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원희룡 전 새누리당 의원의 출마설 덕분이다. 그는 1%의 제주도가 낳은 ‘전국적’ 인물이다. 대입 학력고사 수석, 사법시험 수석이 그의 꼬리표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시험으로 뽑는다면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다. 그의 고교(제주제일고) 7년 후배인 기자가 전해 들은 전설 하나. “원희룡이 학교 다닐 때 선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릴 때가 언제였는지 알아? 원희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하려 할 때!”
원희룡은 전국 1%에서 탄생한 전국 1등이었다. 그러나 그 ‘1%’, 그 ‘1등’ 모두 그에겐 극복 대상이기도 했다. 공부 1등이 정치 1등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3선 의원이고 개혁파 선두주자였지만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 대표 선거에서 줄줄이 쓴 패배를 맛봤다.
한국 정치공학상 그가 기댈 지역 토대는 사실상 없다. 1% 출신 아닌가. 2000년 16대 총선(서울 양천갑)에서 처음 당선됐을 때 제주 언론 기자들이 ‘지역 맞춤형 소감’을 요청했다. “물심양면으로 당선을 도운 제주도민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원희룡은 원하는 대답(“제주도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다. 왜 감사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중앙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386 당선자’로서, 서울에서 ‘큰 정치’를 해보려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1%의 한계, 지역의 벽을 넘는 길을 찾지 못한 듯하다. 최근 저서(‘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에 이렇게 썼다. “우리 정치의 지역 구도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고질적인 병이 다음 선거에서도, 그 다음 선거에서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오늘도 우리는 그저 개탄하고 있을 뿐이다.”
역대 정권이나 정치권의 지역주의 해법은 영호남의 장차관 숫자 맞추기나 그런 모양새 갖추기에 집중돼왔다는 느낌이다. 그럴수록 영호남 이외 지역의 소외감도 깊어갔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첫 조각이 발표됐을 때 경기지역 언론인은 “장관 2명의 호남이 홀대면, 장관 0명인 경기도는 천대다”라는 칼럼을 썼다. 전국의 23.42%(1137만9459명)를 차지하는 최대 광역자치단체에서 나온 소외론이다.
2012년 대선의 유력 주자 3인(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모두 특정 지역 출신인 건 1회성일까. 전국 1% 제주도가 느끼고, 전국 4분의 1 경기도도 느끼는 지역주의 문제를 영호남의 갈등과 균형 차원에서만 해결하려 한다면 영원한 미제가 되지 않을까. 권력구조를 포함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고민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도 안 되는 아칸소 주(미국 인구의 0.94%)의 주지사 출신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동독 출신이다. 비유하면 북한 주민이 통일한국의 대통령이 된 셈이다.
만약 태어난 지역 때문에 꿀 수 있는 꿈의 크기가 제한된다면, 한국이 미국 독일과 같은 선진국이 되겠다는 꿈도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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