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원]배심재판 없애서는 안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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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이 이상하다. 배심원은 모두 무죄평결을 하고 법원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는 배심평결을 무시하려면 왜 배심재판을 만들었냐며 울분을 토한다. 또 누군가는 감정적인 여론에 휩쓸리는 배심재판을 없애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만일 반대로 배심원은 모두 유죄평결을 하고 법원은 결론이 달랐다면, 그들은 서로 반대편의 주장을 똑같이 했었을 것만 같다.

비무장의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총으로 쏘아 죽게 한 히스패닉계 백인 조지 지머먼에게 백인과 히스패닉으로만 구성된 배심원단이 정당방위라고 무죄평결을 내린 일이 2013년 7월 미국에서 있었다. 흑인사회가 폭발하였고 미국 전역으로 시위가 번져나갔다. 편견, 감정, 여론에 의하여 왜곡될 위험은 영미에서도 오래전부터 고민하여 온 이슈이다. 과정도 과정이지만 결과를 또한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더욱 고민하여야 하는 문제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배심평결에 법적인 기속력을 부여하지 않기로 제도를 설계하였다.

오래전에 본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억울하게 기소된 소년에 대하여 11명은 유죄라 하고 1명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시작된 배심평의가 긴 토론 끝에 12명 전원의 무죄평결로 결론이 난 ‘12인의 성난 사람들(Twelve Angry Men)’이라는 영화다. 만일 판사 한 명의 머릿속에서 11 대 1로 유죄의 심증이 생겼다면, 필시 유죄판결이 내려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어리석게만 보이는 갑돌이 을순이가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뽑는다. 그 어리석게만 보이는 배심원들이 재판에서 평결을 한다. 직업법관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손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확한 자료에 접근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위 사건들의 구체적 결론이 옳은지는 잘 모른다. 논증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축구경기에 지고서 경기규칙 탓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입니다. 평결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머먼 사건으로 분노한 흑인 사회에 자제를 호소하였다. 절차에 대한 존중을 큰 가치로 삼았기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었던 문화의 저변이 느껴졌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는 어떤 절차이든 정당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는 어떤 절차이든 부당하다는 생각은 아전인수일 뿐이다.

고민 끝에 만든 배심재판이다. 우리 배심재판의 장점을 배우러 여러 나라에서 오고 있기도 하다. 둥근 집을 지어 놓고 네모 집이 좋아 보인다고 둥근 집을 부숴버리고, 다시 네모 집을 지어 놓고 둥근 집이 좋아 보인다고 또 네모 집을 부숴버리고…. 그러는 사이에 어느 집이든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은 갑돌이와 을순이의 손발만 시리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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