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현우]한국정치 도대체 뭐가 진실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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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작금 한국정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공통된 질문은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이 확인돼야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선행돼야 하는 것이 사건이나 사안에 대한 객관적 실체 파악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내용을 보면 공통된 사실 인식이 결여돼 있다.

이달 18일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있던 날,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 청와대 경호원 사이에 폭행사건이 있었다. 국회 폐쇄회로(CC)TV에 당시 상황이 녹화돼 있으니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진상 파악은 뒷전이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마치 서로 다른 사건처럼 설명하고 있다.

한 사건이 두 당의 입을 거치며 ‘다른 사건’이 되는 것을 보며 경쟁적 동료라는 정서마저도 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폭행을 당했다면 당적에 관계없이 동료의 처지에서 분노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비상식적인가. 예전 국회의원들이 몸싸움이 끝나면 서로 다친 곳은 없는지 물었다던 정서적 유대마저 이젠 ‘전설’이 다 된 모양이다.

이처럼 간단한 사건에 대해서도 여야 간의 인식 차이가 생기는 판이고 보니 다른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여야 대결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양 정당 내부에서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갈등의 증폭만을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며칠 사이에 제기되는 의혹은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고 무엇이 사건의 진실인지를 이해하기 버겁게 만든다. 이석기 의원의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녹음 파일과 녹취록의 위·변조에 대한 의문 제기는 국정원이 이처럼 중대한 사건의 ‘팩트’ 자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혹시나 어떤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필요한(?) 생각을 하게끔 한다.

혼외자(婚外子) 문제로 사퇴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경우도 초반부터 제기됐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다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개인정보를 유출한 인물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같이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이 사건의 의도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한국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모론과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민주당이 천주교 박창신 신부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과 대통령 퇴진 주장을 평가하는 입장을 보면서 민주당에 묻고 싶다. 민주당은 국정원 불법 개입과 관련해 대통령의 퇴진을 목표로 하는지 혹은 대통령의 엄정한 처벌 의지와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개혁을 원하는 것인지. 또한 이 사건에 대통령이 개입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이전 정부에서 국정원이 과잉 충성한 결과라고 보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특검 요구에 맞서 특위 설치를 제안하고 있다.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법적 판결을 기다리자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왜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나기도 전에 서둘러 이석기 의원의 제명이나 통합진보당의 해체를 도모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이들 세력을 편들고자 함이 아니다. 권위주의를 경험한 국민들은 종북 시비가 난무하면서 경직된 현 정국이 혹시라도 국가권력의 팽창과 시민사회의 위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 공방 속에서 그렇지 않아도 심한 정치권에 대한 냉소가 더 심화하고 있다. 정치권의 대화 절벽과 국민의 정치 외면은 기본적으로 정당들의 비일관성과 투명성 결여에서 출발한다. 정당들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정국 해석과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며 정치 목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국민들은 그들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정치에서 국민이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다.

혹자는 말한다. 신문 칼럼 중에서 가장 김빠지는 것이 양비론을 견지하는 글이라고. 그렇지만 작금의 사태는 정치권을 모두 싸잡아 비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의 정치 상황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중국의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뿌옇고 짜증만 날 뿐이다.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quic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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