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액연금수령자는 건강보험료 내는 게 옳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1년에 4000만 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 은퇴자에게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려는 계획이 벌써 세 번째 무산됐다. 퇴직한 고위 공무원의 저항과 현직 고위 공무원들의 묵인 때문이다. 일반인이 가입하는 국민연금에는 4000만 원이 넘는 연금 수령자가 없다. 새로 건보료를 내게 하려는 대상은 공무원 군인 사학 등 공적 연금 수령자 37만 명 중 2만여 명(6% 내외)의 고위직 출신으로 부담할 건보료는 일인당 월평균 18만 원이다. 현재 이들은 자녀의 직장건보에 이름을 올려 건보료를 안 내고 있다.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는 한 원인이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해 6월 처음 입법예고했다. 3개월 후인 9월 시행이 목표였다. 하지만 부처별 협의를 통과하지 못해 시행 시기를 올해 초로 늦췄다. 올 2월엔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로 지연됐다. 올 3월 또 한 번 입법예고했지만 안전행정부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지난달 법제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고액 연금 수령자들은 ‘현역 시절 연금을 받으려고 기여금(연금보험료)을 냈으므로 건보료 부과는 이중 부담’이라고 주장한다. 잘못된 논리다. 전문가들은 “노후 소득은 과거 저축의 결과인 경우가 많으며 연금도 마찬가지다. 연금소득만 건보료를 면제해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자녀의 직장 건보에 얹히지 못하는 다른 연금 수령자와의 형평성도 문제다.

연금 4000만 원은 웬만한 현역 근로자의 연봉 수준이다. 현역 시절 고위직으로 각종 혜택을 누렸던 이들의 집단이기주의적 행태는 보기에 거북하다. 그러잖아도 공적 연금은 세금 지원을 받아 겨우 유지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의 적자보전 규모는 2015년 6조2000억 원에서 2020년에는 10조5000억 원으로 급증한다. 건강보험 역시 5년 뒤면 적자가 10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여 부가가치세 인상이나 건강세 신설 등으로 메우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 고액 연금 수령자들이 건보료까지 기피하려는 것은 국민에게 이중 부담을 지우는 행태다.

보건복지부는 건보료 부과 기준을 ‘연금소득과 기타 및 근로소득의 합이 4000만 원 이상’에서 ‘어느 하나라도 4000만 원 이상’으로 시행규칙을 바꿔 이달 다시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부과 대상이 2만4000명에서 2만2000명으로 줄어든다. 정책의 후퇴다.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눌려 정책을 비트는 모양새 역시 좋지 않다.
#건강보험료#고액연금수령자#은퇴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