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정보원의 수모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퇴임한 지 39일 만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원 전 원장의 검찰 출두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에는 국정원 청사에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했다.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국정원은 이것만으로도 얼굴을 들기 어려운 치욕을 당했다.

특별수사팀은 국정원 여직원의 지난해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이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특별수사팀은 여직원의 인터넷 댓글 게재가 국정원 지휘부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를 파헤치고 있다.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은 참고인으로, 민모 전 심리정보국장은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2009년 5월부터 올 1월까지 내부 게시판에 올린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정치 개입 의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뀐 이후 9명의 역대 원장 가운데 6번째로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았다. 국정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것은 2005년 8월 ‘안기부·국정원 도청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국정원은 민주화 이후에도 전신(前身)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정치 공작 악습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듯하다. 국정원법은 국정원 구성원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국정원은 “직원들이 고유 업무인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인터넷 활동을 한 것”이라는 해명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전임 빌 클린턴 정부 때 임명된 조지 테닛을 계속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기용했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주요 정보부서 책임자를 유임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정보기관이 정치적 중립을 엄격하게 지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정치에 개입했더라면 오늘날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이라는 영예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 상태로 몰아넣었다. 일본 아베 정부의 우익 행보를 비롯해 한국과 주변국 사이의 갈등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처럼 안보 이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는 마당에 국정원은 피조사자 신분으로 전락해 있다. 국정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겪으려는 것인가. 남재준 국정원장은 전임자들의 행적을 보며 오늘의 국정원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국가정보원#원세훈#국정원 여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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