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도연]과학기술 R&D는 원래 비효율적… 연구실패 용납해야

  • 동아일보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
짧고 유한한 삶이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밝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어려움을 감수하는 슬기로운 존재다. 실제로 한 인간의 성공적인 삶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얼마나 희생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업과 국가도 마찬가지다. 내일을 위한 투자와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정부만이 번성하는 국가를 이룰 수 있다.

국민이 땀 흘려 납부한 세금으로 집행되는 정부의 수많은 일들 중에서 미래를 위한 대표적인 업무는 교육과 연구개발(R&D)일 것이다. 교육은 미래의 우리 사회를 이끌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기에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과학적 지식과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R&D도 더 나은 미래를 가꾸는 데 절대적인 필요인자다. 그러나 교육과 R&D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판이하다. 교육에 대해서는 과유불급 상태에 이른 국민적 관심이 오히려 문제지만, R&D는 과학기술자들의 영역으로만 치부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정부는 R&D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 결과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R&D 투자는 비교적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 5년을 돌아볼 때 매년 10% 가까이 R&D 예산이 늘어 2008년 11조 원이던 정부 투자액이 올해는 16조 원을 상회하게 됐다. R&D는 오늘의 국민을 위한 복지가 아니고 미래의 국민을 위한 복지인 만큼 이에 대한 투자는 효용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선거에서 표로 환산되지 못하는 투자이기에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 R&D 확대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서 R&D의 경제적 효율성이 최근 제기된다. 같은 경비로 더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한 노력은 R&D에서도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작년에 출범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동일 주제에 대한 중복 투자를 찾아내 이를 제거하거나 연구의 초기 기획 등으로 R&D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R&D, 특히 기초연구는 본태적으로 비효율적이다. 그러기에 비효율을 감당할 수 있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수많은 전자기기의 바탕이 되는 트랜지스터는 인류문명사를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이의 개발을 위해 미국 정부는 엄청난 연구비를 쏟아 부었고, 초기 생산된 트랜지스터를 국방부가 전량 구매했다. 정부가 연구개발비 지원은 물론 시장 확보까지 해준 덕에 트랜지스터는 뿌리를 내렸고 이를 기초로 오늘의 전자공업이 자리를 잡았다. 이런 R&D는 경제적 효율성을 단기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나 기업은 도저히 추진할 수 없다.

결국 예산의 쓰임새를 개인이나 기업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정부의 R&D는 비효율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그간의 우리 과학기술 R&D는 경제 발전의 도구로서 뚜렷한 목표를 지닌 추격형 과제 수행이었기에 비교적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이제 우리가 앞서가는 선도형 과제 수행에서는 이런 가시적 성과는 불가능한 일이다.

연구자들의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실패하는 연구를 용납하지 못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많은 노력으로 우수한 성과를 만들어 국민에게 보답하는 일은 연구자들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동시에 연구자들에게는 스스로의 보람이며 삶의 이유다. 과학기술자들을 더욱 신뢰하고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가꿀 수 있다.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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