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영환]北 대남협박의 속내는 무엇일까

  • 동아일보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략실장 전 북한 외교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략실장 전 북한 외교관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으며 이른바 ‘강성대국’을 선포한다고 그리도 요란하게 선전하던 북한은 정작 4월 15일 ‘대국’보다 한 단계 낮은 ‘강성국가’도 선포하지 못했다. 강성대국의 가장 큰 축포로 쏘아 올리려 했던 장거리 미사일마저 허공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10여 년 전부터 강성대국이 되는 2012년 4월이 되면 선물다운 선물이라도 있지 않겠느냐며 소박한 희망을 키워온 주민들이 받은 것은 며칠분의 식량과 교복이 전부였다.

북한은 이른바 ‘4월의 명절’ 기간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군사 퍼레이드를 하고 김정은을 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추대해 표면상으로 3대 세습을 완성했다. 당, 정, 군의 엘리트들은 자기들끼리 각종 훈장과 선물을 주고받았다. 여기에 들어간 돈이 수십억 달러다.

지금 북한은 자원 고갈 상태에 있을 것이다.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북한은 축전이 끝난 후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 겪은 ‘트라우마’는 그때보다 클 것이다. 여기에 북한을 통치해 온 절대 권력자 김정일이 사망하고 29세의 어린 김정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면 권력의 공백이 생기고 그 자리를 야심가들이 항상 노려 왔다.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김원홍 보위부장으로 바뀌고 국방위원에서도 사라진 것은 권력의 핵심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권력 내부에 금이 가고 민심이 흔들리니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충성 경쟁’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전역이 대남 협박으로 들끓고 있다. 거의 ‘광기’ 수준이다. 왜 이럴까? 북한 지도부는 현재의 어려움에서 탈출할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 돌파구가 바로 대남 협박을 통해 내부의 분노를 외부로 돌리고 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지난달 18일 대변인 성명에서 “서울의 모든 것을 날려 보낼 수 있는 특별행동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협박했고, 23일에는 “우리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은 일단 개시되면 3∼4분,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순간에 지금까지 있어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수단과 방법으로 모든 쥐새끼 무리들과 도발 근원들을 불이 번쩍 나게 초토화해 버릴 것이다”고 통보했다.

북한은 시정잡배도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한국의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있다. 내부 동요와 흔들림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를 대남 도발과 협박에서 찾으려 하고 이 틈에 한국을 길들이려는 목적까지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주민들이 현재 남한에 표면적으로 보이고 있는 ‘분노’는 실제로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의 표시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분노가 터질 때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세계는 북한이 벌이고 있는 ‘광란의 도가니’를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후 제3차 핵실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에 북한의 우방인 중국마저 북한 지도부에 경고를 보냈다. 북한의 군부와 충성분자들은 대남 비방으로도 체제의 극심한 불안정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언어의 성전’을 넘어 테러나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군사력을 갈고닦아 온 한국군은 연평도 사건 이전의 그 군대가 아니다. 북한은 극렬한 대남 비방이나 도발이 체제의 결속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폭을 부르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략실장 전 북한 외교관
#북한#대남협박#강성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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