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28>‘공감각적인 집’ 녹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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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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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청 제공
해남군청 제공
맛에서 형태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음을 색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적으로는 뇌의 이상 상태지만, 특정한 맛을 느낄 때 동시에 특정한 형태를 보고, 반대로 특정한 형태에서 특정한 맛을 느끼곤 한다. 이런 현상을 ‘공감각’이라고 한다. 공감각은 한 감각기를 통해 다른 감각기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조선 집은 특히 이런 공감각을 요구하는 빛과 색, 형태, 소리, 질감, 냄새 등을 통해 집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풍수적 입지를 통해 광범위한 영역에서 집으로 좁혀 들어오는 우리 조선 집의 특징상 시각적인 것 하나로는 집을 충분히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남 해남군에 있는 녹우당(綠雨堂)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집이다. 이 집은 여러 세대에 걸쳐 완성됐고 사당도 세 곳이나 된다. 마당도 고방마당,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 작업마당, 바깥마당이 있고, 그에 따라 채도 여러 채로 나뉘고 진입처도 다양하다. 보통 고산 윤선도 고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집이 지어진 때는 윤선도 시대보다 훨씬 전이고, 이 집이 오늘날과 같이 살림집으로 정착한 것은 고산의 증손자인 윤두서에 이르러서다.

나에게 녹우당은 퍼즐과 같은 집이다. 녹우당에 가면 공간들이 계속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받기 때문이다. 사실 움직이는 것은 나인데, 나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들도 조금씩 새롭게 결합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이 집의 사랑채인 녹우당도 효종이 왕세자 시절의 스승이었던 고산을 위해 수원에 건립했던 것을 고산이 82세 되던 166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덕음산을 주산으로 서남향하고 있는 녹우당은 집 뒤쪽에 고산이 직접 심었다는 오백 그루의 비자나무 숲을 배경으로 마을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녹우당이라는 당호도 우거진 비자림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소리를 색으로 표현한 멋진 이름이다.

풍수적으로 가장 완벽한 터라는 이 집은 바라다보이는 안산(案山)이 너무 먼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앞쪽으로 너무 휑해서 고산은 마을 앞에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5개의 가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몰무덤’이라고 불리는 이 연못은 메말랐지만 아직도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남아 있다. 묘한 매력으로 넘치는 집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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