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손병돈]‘부양의무자 소득 기준’ 올려야 하는 이유

  • 동아일보

손병돈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손병돈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로 세계 6대 스포츠대회를 모두 개최하는 여섯 번째 나라가 됐고 올해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7대 무역국가에 진입하는 등 세계 일류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이 같은 우리의 화려한 겉모습에 열광하다가도 내부를 돌아보면 씁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 상황은 씁쓸함을 넘어 남들이 알까봐 숨겨야 할 정도다. 2009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3%로 노인 2명 중 1명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캐나다(6.3%), 스웨덴(6.6%)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하거나 못한 멕시코(27.3%)나 대만(28.7%)과 비교해도 우리의 노인 빈곤은 심각하다.

이런 빈곤이 우리나라 노인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나라 7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109.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무려 8.3배나 높다.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국가를 자부하려면 노인들이 빈곤으로 목숨을 끊는 현실은 최소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기준을 최저생계비 130% 미만에서 185% 미만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이 전혀 없는 빈곤한 사람도 부양 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생계비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소득상으로는 빈곤하지만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약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부양의무자 기준 개정안이 시행되면 10만 명 정도가 생계비 지원을 새로 받게 된다.

이 같은 개선 조치에도 불구하고 90만 명은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건복지부의 부양의무자 기준 개정은 미흡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부양의무자 기준 개정과 관련해 잘사는 자식들이 있는 노인들까지 국가가 도와주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이번 기준 개정은 부양의무자(4인 가구 기준)의 소득인정액 기준을 월 256만 원에서 월 364만 원으로 인상하는 것이다. 이는 빈곤 노인 한 명이 있고 가족이 4명인 부양의무자, 즉 자식이 있을 경우 빈곤한 부모에게 최저생계비로 매달 53만 원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잘산다’고 판단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소득인정액 월 256만 원에서 월 364만 원으로 올리는 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가족이 4명인 가구의 월 총소득 364만 원은 자녀들의 학원비 내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저축하면서 부모에게 매달 53만 원의 생활비를 보낼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수준일까.

더욱이 부양능력 판정은 소득 기준뿐만 아니라 재산 기준도 만족시켜야 한다. 소득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일정 수준 재산이 있으면 그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그 액수가 일정액 이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서울에서 전세 1억5000만 원짜리 주택에 살고 통장에 1000만 원이 있을 경우 이 가구의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값은 월 100만 원이 돼 부양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는 83만 원 기준을 훨씬 초과하게 된다. 이런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서 홀로 사는 노모나 노부에게 매달 53만 원의 생활비를 보낼 정도로 ‘잘사는’ 부양의무자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정이 이런데도 부양의무자 기준 개정에 따른 예산 요구가 너무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살지만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못 보내고 있는 많은 젊은 부부를 불효자로 낙인찍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포퓰리즘 논란이 난무하는 지금, 꼭 필요한 계층에 대한 보호와 포퓰리즘을 혼동하지 않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손병돈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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