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정치가 바로 한국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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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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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박희태 국회의장이 단상에 올랐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표결에 부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주당 의원들이 서류와 물병 등을 단상을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순식간에 단상으로 몰려갔고, 의장석을 에워싸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과 ‘활극’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야당 의석에서 날아온 시계에 맞았다. 단상으로 날아올랐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당 의원들에게 밀려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주어 바꾸면 똑같은 한국·대만 국회

가상의 시나리오 같지만, 머릿속 상상으로만 나온 얘기는 아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을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으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대만과 중국 간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으로 △‘민주당’을 ‘민진당’으로, ‘한나라당’을 ‘국민당’으로 바꿔보자. 동아일보가 최근 연재한 ‘정치가 한국病이다’ 시리즈의 4번째 ‘한국정치 닮은꼴 대만을 가다’의 서두 부분과 꼭 들어맞는다. 지난해 7월 대만 입법원(국회)의 폭력사태를 묘사한 대목이다.

주어만 바꾸면 똑같을 정도로 한국과 대만의 국회 수준은 비슷하다. 더 씁쓸한 것은 국회 폭력에 관한 한 한국이 ‘원조’라는 게 현지 취재 결과다. 대만 야당이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전투방법’을 배웠다는 것. 대만 정치인이 “우리도 몸싸움은 하지만 보좌진과 사무처 당직자까지 동원하진 않는다”며 한국에는 ‘졌다’는 표정을 짓는 장면에선 읽는 사람의 얼굴까지 화끈거린다.

시리즈를 연재하며 “그래도 정치를 한국병으로까지 표현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실 ‘한국병’이란 표현은 ‘영국병(British Disease)’에서 따왔다. 영국병은 1960, 70년대 영국에서 만연한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의 노동시장 구조가 부른 만성 생산성 저하를 말한다. 60년대 세계 9위였던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6년 18위까지로 추락했다.

1997년 1만 달러를 넘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십여 년간 1만 달러의 늪에서 헤매다 지난해에야 2만 달러에 턱걸이했다. 여기엔 좌파정권 10년 고비용·저효율 정치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실용주의’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에 와서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10년 내 국민소득 4만 달러’를 공약했지만 이대로라면 3만 달러도 턱없다. 정치를 감히 ‘한국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작금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과 그에 따른 수도권 규제완화 반대 열풍,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설치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을 둘러싼 지역 간 대치상황을 보자. 국가적 갈등을 치유하는 백신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상처에 모래를 부어 병증(病症)을 키우고 있다. 겉으론 지역 이익을 대변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자명하다. 권력을 유지해 자기세포를 증식하기 위해서다.

영국병 고친 대처도 두 손 들 한국병

정치자금법을 개악하고 공직선거법 당선무효 규정을 완화하려는 것도 자기세포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보호막을 두껍게 하려는 것이다. 전직 의원에게 세금으로 매월 120만 원을 지급하는 법안까지 슬그머니 통과시킨 것도 ‘마르고 닳도록’ 자기세포를 온존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한국병을 정치권 스스로 치료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정치가 민주화된 1992년 14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148건의 의원 징계안이 국회 윤리위에 접수됐다. 하지만 징계를 발효시킬 본회의에는 단 한 건도 상정하지 않았다.

한국병은 오늘도 두꺼운 보호막을 치고 갈등을 자양분 삼아 병을 키우고 있다.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도 두 손 들고 갈, 이 한국병을 어찌할꼬.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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