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한나라당만 쳐다볼 수도, 돌아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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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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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구순을 훌쩍 넘긴 일본의 원로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씨는 지난해 펴낸 책 ‘보수의 유언’에서 ‘일본 정치가 보수 양당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규정했다. 2009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에 압승을 거둔 민주당이 기본적으로는 보수 성향이므로 앞으로 두 정당끼리 서로 긴장 및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정권 교체를 이뤄가면서 일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카소네 씨는 자민당을 대체할 보수 정당으로 민주당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유권자들이 쉽게 자민당을 버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兩黨 체제가 부러운 이유

미국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도 같은 보수 성향이라는 점에서 미국 정치 역시 ‘보수 양당 체제’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한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내놓은 정책들은 별 차이가 없었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가 선거에서 최대의 쟁점이 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시각을 달리해온 의료 개혁과 낙태 문제 등이 이슈로 떠오르긴 했으나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통령 취임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펴고 있는 정책을 봐도 민주당의 정체성은 쉽게 드러난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국정연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의회가 통과시켜줄 것을 촉구해 시장 친화적 자세를 견지했다. 정부 예산 동결, 법인 세율 인하 등의 조치들도 공화당 정책 노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의 양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보수와 진보를 내걸고 정치를 하고 있다. 보수 양당이 경쟁하는 구도가 아닌,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대결하는 구도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새로운 강령을 통과시키면서 ‘중도 개혁’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진보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한나라당의 정책과는 상당히 다른 변화가 있을 게 분명하다.

이미 우리는 현재의 정치구도 아래 정권 교체가 이뤄졌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 교육 분야가 그렇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전국 6개 시도에서 좌파 교육감들이 민주당 등의 지원을 받아 당선돼 이들에게 교육 권력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선은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시험과 경쟁을 극도로 싫어하고 평등과 인권을 앞세운다. 이런 이념을 학교에 이식하는 방식도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극단 속에서 깊어가는 유권자 고민

좌파 교육감이 취임한 지난 9개월 동안 교육현장에는 큰 혼란이 벌어졌다. 이들의 정책 방향은 전면 무상급식이나 체벌금지처럼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있고, 학생의 학습권보다는 교원노조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하다. 한마디로 이념의 틀에 갇혀 세계의 긴박한 흐름 같은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교육정책에 따른 피해는 당장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는 않지만 머지않아 구체화될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런 결과를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좌파 교육감 후보에게 표를 주었을지 모른다. 지금 이들을 놓고 다시 투표한다면 당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정치를 잘못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하찮게 여긴다면 유권자들이 나서서 응징해야 옳다. 그래야 정치가 한곳에서 정체되지 않고 부단히 자기개혁을 꾀하게 된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막상 정권을 바꾸기로 결심할 경우 어떤 대안을 택할지 고심할 수밖에 없다. 좌파 교육감이 들어선 시도(市道)처럼 선거 한번에 교육현장이 전쟁터로 바뀌고 정책이 순식간에 뒤집어진다면 국민은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식의 파괴적인 정권 교체는 국가에 해로움만 끼칠 뿐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싫으면 공화당을 선택할 수 있고 일본이라면 자민당이 반성하고 쇄신했는지 따져 다시 고를 수도 있다. 그 사회가 공유해온 소중한 가치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정치 내부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보수 양당 체제가 갖고 있는 장점이다. 그러나 한국의 유권자들은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이 정치를 못하면 이념지표상 저 멀리 떨어진 진보정당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더구나 진보 쪽이 포퓰리즘을 앞세운 공세를 집요하게 펴나가자 한나라당도 보수의 원칙을 못 지키고 함께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교육정책에서 현 정권은 좌파 교육감의 급진 노선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이유로 온갖 정책을 혼란스럽게 쏟아내며 교육경쟁력을 해치는 자해(自害)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4·27 재·보선을 앞두고도 지역 유권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여당 쪽 후보는 아직도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이익 챙기기에 골몰하고 있고 야당 쪽은 여당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영 미덥지 않다.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보수정당들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여나가는 정치가 부러워진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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