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다문화시대라 더 값진 國樂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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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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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가운데 일부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정부가 반환하기로 약속한 일본 궁내청 소장 한국 도서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시간문제일 뿐 조만간 반환될 것이다. 해외에 유출됐던 문화재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문화재들이 귀환 이후에 잘 관리되고 있는지, 활용은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청중 무관심으로 소멸 위기감

해외 유출 문화재의 귀환을 간절히 원했던 마음이 우리 전통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처음부터 이 땅에 자리 잡고 있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세심한 보호와 전승이 이뤄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전통문화는 낡고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국인의 정신적 유산이 농축돼 있는 한문 고전 가운데 현대 한국어로 번역이 꼭 필요한 것은 8000여 책에 이른다. 이 중에서 80%가 아직 미번역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그대로 묻혀 버릴지 모른다. 특히 우리 전통문화에서 큰 축을 형성해온 국악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주 국립극장에서는 의미 있는 연주회가 열렸다. ‘어부사시사’를 쓴 조선의 문인 고산 윤선도는 거문고 연주를 즐겨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어부사시사’를 국악칸타타로 만들어 공연을 가졌다. 이날 연주회에는 전남 해남의 윤선도 고택(故宅)에 소장되어온 옛 거문고가 극장 로비에 선을 보였다. 윤선도가 손수 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거문고다. 연주회는 이 거문고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진행됐다. 국악칸타타 ‘어부사시사’를 윤선도에게 헌정(獻呈)한다는 의미였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왕손들의 태교를 위해 국악을 활용했다는 옛 문헌을 토대로 한 ‘조선왕실 태교 콘서트’도 지난주 마련됐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이 임신한 부부를 대상으로 가야금 연주를 들려주는 공연이었다.

국악계가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며 부활을 모색하고 있으나 국악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젊은 세대는 국악에 무관심하다. 매일 저녁 수많은 공연이 전국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나 관객 모으기가 가장 힘든 분야가 국악이다.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선정된 뒤에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예술계 대학 졸업생이 3만 명 이상 배출되고 있으나 국악 분야는 8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자꾸 줄어드는 추세다. 10년, 20년 뒤 국악이 이 땅에 존속하고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문화 정체성 위해 전통 진작해야

우리 전통을 이해하려면 국악을 알아야 한다. 조선조 왕들은 음악을 정치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바른 정치를 위해 예(禮)와 악(樂)이 중시됐다. 예는 도덕과 규범 등을 말하며 악은 음악을 뜻한다. 예는 천지(天地)의 질서를 이루게 하며 악은 천지의 화합을 이끌어낸다고 봤다. 즉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도덕 이외에 음악을 통해 화합과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음악은 교육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음악은 인간의 성정(性情)을 변화시켜 인격을 완성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선비의 방에는 거문고와 같은 악기가 반드시 갖춰져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문화 장르들이 유입되면서 국악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그러나 외래문화의 공세가 거셀수록 전통문화의 가치가 더 돋보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은 가부키 스모 기모노 등 전통문화를 해외에 적극 알리면서 국가 이미지를 높였다. 중국은 최근 공자 사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과 함께 진행해온 ‘탐원(探源)공정’은 기원전 3000년경의 오제(五帝) 시대까지 중국 역사를 끌어올리려는 작업이다.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 있는 모든 민족이 중화 문명의 일부였다고 강조해 중국의 내부 단속을 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늘어나면서 다문화를 강조하는 흐름이 두드러지는 반면에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전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시대와 맞지 않는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다문화사회를 인정하고 대비하는 것과 전통문화의 전승은 별개의 일이다. 한국이 하나의 국가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정조는 세종에 이어 국악을 진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군주로 꼽힌다. 그는 “누가 국악이 무너져서 흥기시킬 수 없다고 하였는가. 국악을 진작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흥기하지 않는 것이니, 흥기하는 것은 진작시키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국악의 소멸을 막기 위해 지금도 유효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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