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갑영]공기업 선진화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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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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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국민기업의 대명사였던 한국전력이 적자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8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더니 작년에는 무려 1조8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적자 누적으로 3년째 배당도 못한다니, 한국의 대표기업이 형편없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셈이다. 스스로 “글로벌 톱5의 종합 에너지 기업”이라고 외쳤지만 재무구조가 갈수록 부실해져 이젠 국제무대에 진출하기도 어렵게 됐다. 실제로 작년 이집트와 인도네시아의 발전소 입찰에 나섰다가 사전 자격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전기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거대 기업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발전 원가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를 100원에 생산해 97.3원에 팔고 있다니 매출이 증가할수록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전기요금이 우리의 2.4배이고 미국도 1.4배라니 우리 전기요금 구조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정부가 공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전기요금을 무리하게 억누른 결과 아니겠는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납품가를 후려치는 횡포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요금이 싸다 보니 국민 1인당 전기사용량도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많아졌고 이 부담이 고스란히 한전의 적자에 반영된 것이다.

한전 LH공사 부실은 정부책임

그렇다고 값싼 전기요금이 반드시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 주는 것도 아니다. 이미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에너지 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고 한전의 누적된 적자는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장 요금이 싸다고 생색을 내겠지만 엉뚱한 사람이 쓴 부채를 제삼자가 나중에 갚아야 하는 꼴이니 이처럼 불공정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물가를 볼모로 공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을 남용하고 있는 셈이다.

공기업의 부실화는 비록 한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병한 LH는 부채가 120조 원에 달하고 하루 이자만도 100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지구상에 이렇게 부실화한 공기업을 어디서 찾아보겠는가. 이것 역시 사업성도 없는 국책사업을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그럼에도 국회의 압력과 정부의 눈치에 밀려 아직도 제대로 사업 조정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공기업 부실화와 비효율, 방만한 경영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문제의 근원은 대부분 정부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다. 당대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성도 없는 개발사업을 떠넘기고, 권력의 전리품인 양 낙하산 인사를 일삼으며, 과다한 규제로 자율성도 빼앗으니 그런 기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경영부실의 원천이 정부에서 비롯되니 빚더미에 성과급 잔치를 벌여도 정부는 구경만 하기 일쑤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개혁이 도마에 올라왔지만 성과는 대부분 기대에 못 미쳤다. MB 정부도 3년 전 7개의 금융 공기업을 포함해 28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31개 공기업을 14개로 통폐합하는 선진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지금, 성과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우선 대표적인 민영화 사례나 통폐합 실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낙하산 인사와 과다한 규제의 관행도 여전하며, 그렇다고 이른 시일에 선진화 방안이 구체화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 또 한 번 말의 성찬으로 끝나버릴 것 같은 우려가 앞선다. 특히 우리은행 산업은행 같은 금융 공기업의 민영화도 여전히 큰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민영화나 통폐합 같은 구조적인 개혁이 부진하면 인사와 규제, 감독 등 소프트웨어부터 개선해 경영성과를 높여야 할 텐데 이것 역시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오히려 금융권을 비롯한 일부 민간 부문까지 공기업인지 사기업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민간 시중은행의 감사는 여전히 금융감독원에서 모두 내려 보내고 있다니 금융계의 전관예우가 법조계 못지않게 심각하다. 심지어 어떤 은행은 금감원의 내부 선임이 늦어져 임시주총까지 다시 개최해야 한다니 어디서 선진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집권 후반기 실종된 공기업 개혁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한 사회의 기치도 민간에만 요구할 게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부터 강조돼야 한다. 정부가 먼저 우월적인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하지 않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옳다. 민영화도 민간과 경쟁이 가능한 공기업부터 지체 없이 실시해야 한다. 공기업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더는 공기업을 정치적 도구로만 남용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선진화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jeongk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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