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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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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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논설위원
권순택 논설위원
광주지법 부장판사가 법정관리기업 감사를 친형과 변호사 친구에게 맡긴 사건은 판사들이 자신들의 성(城)에서 성주처럼 살고 있음을 보여줬다. 법원은 판사의 통화기록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해 수사도 방해했다. ‘범죄에 관여했다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지만 ‘제 식구 감싸기’로 봐도 무리가 아니다. 법원이 판사와 판사 출신 변호사까지 싸고 돈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검찰도 다를 게 없다. 2006년 서울의 한 경찰서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자를 적발하고도 고소하지 않고 거액의 합의금을 받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를 수사했다.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계속 기각하자 경찰은 불구속 송치로 수사를 끝냈다. 검찰이 스폰서 검사들을 봐줬다가 특별검사가 나선 사건은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도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전현직 판검사 비리가 가끔 드러나지만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판검사 인사가 다가오면 변호사 수임 건수가 줄고, 고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벼락부자가 되는 건 전관예우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전관예우 때문에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은 좌절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가 최근 쓴 책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는 법조계 내부 고발장처럼 읽혔다. 그는 “대법원 판사들은 열 명의 생사람을 잡더라도 한 명의 범인을 놓치지 않겠다는 분명한 결의를 가졌다고 나는 믿는다”고 썼다. “판사들은 힘깨나 쓰는 사람이나 전관예우 변호사의 청탁을 들어주느라 엉터리 판결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책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충격적 내용도 수두룩하다.

그동안 사법개혁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별검사제, 검찰총장 임기제와 인사청문회, 검사동일체 원칙 완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제도는 검찰 개혁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검찰은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심지어 정권의 파트너라는 비판도 듣는다. 노무현 정부 때 사법 권력은 법원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에 의한 사법의 정치화나 막말 판사 같은 수준 미달 판사들은 법원 권력도 개혁 대상임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법조 개혁안은 검찰과 법원 모두의 반발을 샀다. 개혁안에도 문제가 있지만 개혁 대상의 반발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혁안은 수정 보완돼야 하지만 판검사 권력을 견제하고 법조계 먹이사슬 구조를 깰 장치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사권, 기소권, 경찰 수사 지휘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독점한 검찰을 견제하려면 경찰에도 수사권을 줘야 한다. 권력 독점은 부패를 낳기 마련이다. 경찰이 판검사 비리를 수사할 수 있어야 법조 비리도 줄어들 수 있다고 믿는다.

사법개혁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도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때 이렇다 할 사법개혁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상설 특검 추진과 일부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권 부여 정도였다. 그나마 취임 후 사라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스폰서 검사 파문 때 ‘범정부 검경 개혁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하지만 검경이 한 달 만에 내용도 없는 자체 개혁안을 발표하자 그냥 넘어갔으니 사법개혁 의지가 있다고 믿기 어렵다.

공정사회를 강조하는 정권이 사법개혁에 등한한 건 자기모순이다. 이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범국민적 기대를 집약해 사법개혁을 추진할 책임이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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