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재승]도시발달이 초래한 도살처분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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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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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수백 년 전만 해도 도시 냄새란 음식 냄새를 뜻했다. 진한 향신료 냄새, 고기를 굽는 냄새, 향긋한 채소 냄새가 그 도시의 사람 사는 향기였다. 우리에겐 정치적 광장으로 알려진 로마의 ‘포룸’이나 아테네의 ‘아고라’는 원래 음식을 사고파는 시장이었다. 사람들은 시장에 모여 음식을 거래하면서 사교활동을 하고 정치적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자동차와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대규모 슈퍼마켓은 도시 외곽으로 옮겨졌고, 냉동포장기술이 발달해 닭과 돼지를 시골에서 잡아 이송하면서 도시에서 음식 냄새는 점차 사라졌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서울에선 닭장 안에서 파닥거리는 닭들 중에 한 마리를 골라 그 자리에서 잡아주는 시장 풍경이 흔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풍경이 사라진 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도시인들의 엄청난 육식문화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규모로 사육된 소와 돼지, 닭을 산지에서 직접 잡은 후 포장해 이송하지 않고서는 도시인들의 포악한 식성을 당해내지 못한다.

인간이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채 1만 년이 못 되지만 지금 같은 ‘육류의 폭식문화’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육류소비량은 무려 37kg. 연간 120kg에 달하는 미국의 육류 소비보다는 적은 편이지만 40년 전보다 무려 10배 가까이 늘어난 양이다.

도시인 육식문화 떠받치는 농촌

세계적으로 도시 거주 인구가 농촌 거주 인구를 초월한 것은 2006년. 현재 도시는 지구 자원의 75%를 소비하고 있으며 2050년까지 도시 인구는 지금의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도시가 농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생활 주거 형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시가 인간의 음식문화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가를 연구하는 영국 런던대 연구원 캐럴린 스틸의 저서 ‘배고픈 도시(Hungry City)’에 따르면 하나의 도시를 먹여 살리는 데 도시면적의 100배에 해당하는 넓은 농지가 필요하다. 식량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농촌, 저장하고 운송하는 물류유통회사, 간편 요리를 제공하는 가공식품 제조회사와 레스토랑들이 없다면 이제 도시는 하루도 생존이 어렵다.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사람 한 명이 먹는 곡물의 11배가 필요하고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이 보리 1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 양의 1000배에 이르니 육류를 폭식하는 도시는 가히 농촌에 기생하는 삶의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30년 영국의 어느 시인이 ‘가난한 자는 모든 것을 지불한다’라는 소곡에서 노래했듯이 ‘왕은 모두를 다스리고/성직자는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변호사는 모두를 변호하고/농부는 모든 것을 지불하고, 또 모두를 먹인다’는 표현이 한없이 씁쓸하기만 하다.

농촌은 도시가 날마다 먹어치우는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에게 육류사료를 먹이고 바이러스 전염에 취약한 좁은 사육시설에서 소와 돼지, 닭을 키우다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기도 한다. 광우병의 등장도, 구제역의 빠른 전파도 도시인들이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어치우지 않았다면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병적 현상이었다.

지난 몇 달간 한반도에선 구제역의 빠른 전파로 인해 3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를 도살처분했다는 사실은 뉴스로 전해 듣는 이상으로 충격적인 소식이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정을 나누며 애써 키운 소와 돼지를 생매장하는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지금 엄청난 트라우마에 고통 받고 있다.

이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도시의 개와 고양이에게 끔찍한 전염병이 돌아 각 가정에서 키우던 반려동물 300만 마리를 몇 달 사이에 생매장했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도시는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로 아수라장과 눈물바다가 됐을 것이다. 그것들이 ‘좋은 비료’가 됐을 거라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도시에 살고 있는 염치없는 사람들은 ‘구제역의 흔적’이 지하 침출수로나마 도시로 흘러들어올까 봐 걱정한다. 농지를 더럽히거나 악취로 인해 행여 피해를 볼까 봐 노심초사한다.

농민들의 정신적 충격 보듬어야

지금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은 300만 마리의 동물을 몇 달 사이 생매장하도록 강요받았던 농민들과 이 끔찍한 살육에 원치 않게 참여했던 공무원들이 받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이다. 대규모의 정신과 의사와 임상상담사가 그들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들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겠지만 그것이 도시인들이 취해야 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구제역 때문에 쇠고기값 돼지고기값이 오를까 봐 걱정하는 도시인들이 농촌에 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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