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대한민국 외교통상부

동아일보 입력 2010-09-29 03:00수정 2010-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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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 정부 시절인 1990년대 중반.

같은 부처에 출입하는 기자들과 함께 동남아의 한 나라로 출장을 갔다. 도착 첫날, 기자들과 만난 한국 대사는 알 듯, 모를 듯한 한마디를 던졌다. “요즘 동남아에선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새롭게 평가하고 있어요.”

때는 YS 정부 중반기. DJ도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기 전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인사운동’이 용인되는 독특한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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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출장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대사가 기자들을 초대해 저녁을 함께했다. 그런데 술이 거나해진 대사가 노골적으로 ‘DJ 찬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DJ에 대한 극찬은 ‘YS 비하’로도 이어졌다. 기자들이 오히려 ‘김영삼 정부 대사가 저래도 무사할까’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서울에 돌아와 알고 보니 그 대사는 당시 외무부(현 외교통상부)에서 꽤 잘나가던 외교관이었다. 어느 때부턴가, 한직으로 돈 그가 인사 불만이 꽤 많았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가 인사 불만 때문에 DJ 쪽 줄에 서려 했는지, 아니면 진짜 DJ를 존경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공교롭게도 그 일 직후 DJ는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 대사는 DJ 집권 후에도 중용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참으로 독특한 조직이다.

먼저, 정부 부처 가운데 ‘인사운동’이 공공연하게 용인되는 거의 유일한 조직이다. 외무부 출입기자를 했던 경험으로 볼 때 인사 때만 되면 외교행낭(파우치) 편으로 해외공관에서 장차관에게 편지가 날아온다. 굳이 인사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근무 성과, 현지 정착의 고충 등을 담아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는 공관장들이 있다. 전문이라는 보고체계가 있음에도 별도의 사신을 띄우는 데는 자신의 존재를 인사권자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배어 있다. 이 때문에 편지는 육필(肉筆)이 진국이다.

선배들의 ‘인사 멘터링’도 특유의 전통이다. 인사철이면 친한 선배들이 나서 조언하고, 후배의 인사를 위해 직접 뛰기도 한다. 주로 같은 과, 또는 같은 공관에 근무했던 선후배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외교부 내에 ‘OOO사단’ ‘△△△사단’ ‘××스쿨’ 같은 말이 횡행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인사운동에 뛰어드는 부인들도 있었다. 해외에서 공관장이 손님을 맞으면 부하 외교관의 부인들이 품앗이를 하곤 했다. 그 연으로 부인들 사이에서도 위계질서가 생기고, 이 끈이 인사철에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과거 ‘누구누구 부인의 치맛바람이 거세다’는 사실은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이런 양상은 여성 외교관이 늘면서 ‘품앗이’ 구조가 흔들리자 무너지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관들이 이처럼 인사에 목숨 거는 이유는 외교부만의 특수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변방을 돌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엔 자식 교육 문제까지 걸려 있다.

프랑스어권 국가서 영자지 뒤적거려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잘한다고 알려지면 아프리카나 중남미를 전전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프랑스어권, 스페인어권 국가에 파견돼서도 영자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나 뒤적거리는 기막힌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외교관의 영어 실력이 전 세계 외교관 평균 이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파동 이후 외교부가 인사쇄신 개선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 직원들이 인사에 ‘다걸기(올인)’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개선안은 여론의 소나기를 피해가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외교부가 변해야 한국 외교가 달라진다. 외교부가 하루빨리 거듭나기를 전직 출입기자로서 바라고, 또 바란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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