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어느 조직보다 정직해야 할 軍이…

  • 동아일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광복 직후 군이 제대로 정비되기 전에 6·25전쟁이 터지면서 국민은 좋건 싫건 군에 크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계기로 군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신뢰가 약화되었던 점을 부정할 수 없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얻어진 현행 헌법하에서 국가질서 전반이 크게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군의 역할 또한 정상화되었고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더불어 군에 대한 신뢰도 크게 회복되었다. 군 스스로 민주군대를 자처하면서 신뢰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제는 군의 정치 개입에 대한 우려도 과거보다 현저하게 낮아졌다. 군 내부에서의 비리나 폭력의 문제도 크게 개선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이나 북한의 서해 포격을 계기로 군에 대한 불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를 북한 입김의 작용이나 일부 반정부적 성향을 지닌 누리꾼의 활동으로 치부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럽다. 그러한 요소가 일부 작용했을 수는 있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군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고 원인의 상당 부분을 군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천안함 사건의 수습 과정에서 군이 보여주었던 비밀주의는 많은 의혹을 양산했다. 청와대에서 국제조사단을 구성하여 객관적인 조사를 추진한다고 공표하고 이를 추진하는 동안에도 군은 천안함과 관련된 정보 공개에 항시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것이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온갖 추측을 확대 재생산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군사작전에 관한 사항을 공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군사기밀을 지키려는 군의 노력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군과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함으로써 야기된 국가적 손실을 생각할 때 군사기밀과 관련된 사항이라는 변명만으로 구체적 해명을 피하려 했던 모습이 과연 현명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어쩌면 국민이 군사기밀에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곳곳에서 군사시설과 관련한 접근금지 또는 사진촬영금지 같은 푯말을 보면서 의미와 실효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군사기밀이라는 말의 심각성 자체를 실감하지 못할 수 있다.

북한의 서해 포격에 대한 군의 입장 변화는 군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더욱 크게 자극했다. 북한의 포격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지는 않았다는 발표가 번복되면서 군의 군사적 대응능력 자체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크게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군사기밀에 대한 비밀주의가 아니라 중요한 군사적 사항에 대한 발표의 혼선이 국민의 불신을 야기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이건 국가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언행, 일관성 있는 언행이 중요하다. 군이 일관성 없이 은폐와 말 바꾸기를 반복하면서 불신을 자초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안보를 위해 중요한 군사기밀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탓하기 이전에 무엇이, 왜 군사기밀인지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기준을 제시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국민이 군을 신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안보의 첨병은 군이지만, 국민의 신뢰와 협조가 없는 안보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군이 다시 한번 되새기기 바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